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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해설가의 나무 이야기 -석류

유미란 기자 입력 2026.09.10 15:23 수정 2026.09.10 15:23

죽음과 부활의 약속 –석류-

↑↑ (과즙음료 판매장에 전시 중인 석류)
ⓒ 동부중앙신문

붉게 익은 석류 하나를 손에 들었다. 겉껍질은 투박하고 단단하다. 그러나 칼끝으로 조심스럽게 껍질을 가르자 뜻밖의 세계가 열렸다. 붉은 보석 같은 알맹이들이 서로 몸을 기대고 빼곡하게 들어 있다. 한 알 한 알은 붉은 루비와도 같은 알들이,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생명을 품고 있다.
석류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사람의 삶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겉은 거칠고 단단하지만, 그 안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주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리고 삶이란 결국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다음 생명으로 이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석류는 낙엽이 지는 소교목으로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고 중부지방은 겨울을 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처음부터 우리의 과일나무는 아니었다. 그 뿌리를 따라가면 튀니지 카르타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지중해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 닿는다. 출애굽기와 그리스 로마신화 속에도 석류 이야기는 진하게 스며있다.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다. 석류 한 그루의 역사에는 동서 문명이 오간 긴 길이 놓여 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의 장건이 서역[안석국: 현재의 이란 이라크지역의 옛 나라 ]에서 돌아오면서 석류를 가져와 [安石榴 안석류]라 불렀다. 장건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실크로드의 길을 연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 길을 따라 비단만 오간 것이 아니었다. 포도와 석류 같은 식물도 사람과 함께 국경을 넘는다. 씨앗 하나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는 데에는 사람의 발걸음과 문명의 교류가 필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류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정원과 생활공간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면 석류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 그림과 도자기, 자수와 가구 등에 등장하는 길상 문양이 되었다. [양화소록]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왜 하필 석류였을까. 답은 열매를 가르는 순간 쉽게 알 수 있다. 수많은 붉은 씨앗이 한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손의 번성을 떠올렸다. 하나의 열매 안에 수많은 씨앗이 들어 있으니, 석류는 ‘자손’과 ‘다복’을 상징하는 과일이 되었다.
현재에도 출산율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인구가 곧 국력이자 힘의 원천인 시대에 석류는 다산을 나타내는 훌륭한 본보기였다. 혼례를 올리는 여인에게 석류 문양을 선물하고, 혼수품이나 생활용품에 석류를 새기며 다산과 건강 다복을 기원한다.

↑↑ 익어가는 석류 AI 이미지 생성
ⓒ 동부중앙신문

석류는 꽃도 특별하다. 초여름, 짙은 초록 잎 사이에서 피어나는 석류꽃은 화려한 꽃들과는 조금 다르다. 크고 풍성하기보다 단정하고 붉다. 그러나 그 붉음은 유난히 강렬하다. 꽃은 오래 머물지 않고 떨어진다. 사람들은 흔히 꽃이 지는 것을 끝이라고 생각한다. 낙화는 끝이 아니다. 오히려 열매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꽃이 진 자리에서 열매가 자란다.
이 단순한 자연의 이치는 우리 삶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젊음이 지나가고, 자녀가 성장해 곁을 떠나고, 한때의 직업과 명예가 사라지면 인생의 꽃도 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은 말없이 가르쳐준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힌다고. 석류는 그 사실을 아주 붉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석류에는 서양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에게 붙잡힌 페르세포네는 지상으로 돌아가기 전 석류 씨앗을 먹는다. 그 때문에 그녀는 일 년의 일부를 지하세계에서 보내야 했다. 딸을 잃은 어머니 데메테르가 슬퍼하는 동안 대지는 메말라갔고,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꽃이 피고 곡식이 자랐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계절의 순환을 설명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묘하다. 동양에서는 석류가 많은 자손과 번영을 상징했고, 서양의 신화에서는 생명과 죽음, 이별과 재회의 경계에 놓였다. 또 다른 성화에서는 부활과 생명을 의미한다. 문화는 달랐지만, 인간이 석류에서 읽어낸 감정은 결국 하나였다.

생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며 이어진다. 단단한 석류껍질은 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세월이 흐르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긴다. 젊은 날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삶의 껍질은 점점 단단해진다. 그러나 그것을 늙음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단단해진다는 것은 안에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의 삶이 꽃이라면, 나이 든 사람의 삶은 열매에 가깝다. 꽃은 아름답지만, 열매는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씨앗을 남기고,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인생의 후반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얼마나 아름답게 피었는가보다 어떤 씨앗을 남겼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시간이다.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프로세르피나(Proserpine)」,
1874.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 동부중앙신문

석류를 한 알 먹은 대가로 지하세계에 머물게 된 프로세르피나는 계절의 순환과 생명·죽음의 경계를 상징한다.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석류의 성모(Madonna della Melagrana)」,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Galleria degli Uffizi
ⓒ 동부중앙신문

르네상스의 화가 보티첼리는 붉은 석류를 성모와 아기 예수 사이에 놓아 생명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신비를 한 열매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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