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숲해설가원종태 | ⓒ 동부중앙신문 |
성큼 다가온 오월, 식물의 세계는 천국이다.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야말로 찬란한 계절의 여왕이다. 많은 사람이 오월에는 시인이 되고 예술가가 된다. 신록을 찬미하고 연일 자라고 성장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오월을 맞이하면 한 번쯤 낭송하고 싶은 아름다운 시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 | | ↑↑ [만개한 마로니에 꽃, 꿀이 가득한 밀원식물이다.] | ⓒ 동부중앙신문 | |
5월은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5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언어의 마술사 시인의 눈뿐이랴, 보통의 백성들도 산천초목의 찬란한 모습에 푹 빠져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름다운 오월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미처 한 소절의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유월을 향하여 달려간다. 오늘의 주인공은 오월의 태양을 듬뿍 빨아드리며 꽃을 피워주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는 마로니에[가시칠엽수]가 주인공이다.
| | | ↑↑ [파리 몽마르트 공원의 마로니에] | ⓒ 동부중앙신문 | |
한국에서는 '가시칠엽수'가[정명 Aesculus hippocastanum L.] 정식명칭이며 ‘유럽칠엽수’라고도 한다. '마로니에(marronnier)라는 명칭은 어원적으로 보면 '밤'을 뜻하는 프랑스어와 관련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 나무를 Marronnier d'Inde(인도밤나무)라고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말밤나무’라고도 부른다. 가시칠엽수는 최대 30~40m까지 자라는 넓은 잎을 지닌 낙엽 활엽수로,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 동그란 형태를 이룬다. 오래된 나무의 경우 가지의 끝이 휘어져서 늘어지기도 한다. 잎은 5~7장이 모여 손바닥 모양을 나타낸 형태가 칠 엽을 이루고 이 칠 엽이 나무의 이름이 된다. 열매는 뾰족한 가시가 있는 껍질로 덮여 있다. 홉사 큰 아주까리 열매처럼 보인다. 열매가 익으면 밤처럼 벌어진다. 그 속에 들어있는 열매가 홉사 알밤 모양이다.
이 열매의 껍질에 가시가 있어, 한국에서는 일본칠엽수와 구분하기 위하여 가시칠엽수라 명칭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모양의 일본칠엽수가 있고 최근 공원이나 아파트단지 조경에도 많이 심고 있어 두 나무를 확실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 | | ↑↑ [단풍이 드는 일본 칠엽수] | ⓒ 동부중앙신문 | |
일본칠엽수는 열매에 가시가 없다. 두 나무가 함께 심기어져 있는 곳도 있기 때문에, 열매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껍질을 벗기면 마치 밤과 같은 고동색의 열매가 나온다. 열매는 독성이 있어 식용이 어렵다. 먹음직하다고 무심코 먹는다면 복통을 일으킨다. 구토 위경련을 일으킬 수 있으니, 밤으로 오인하고 섭취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다람쥐나 청설모도 이 열매를 기피 한다. 그러나 독[毒]이란 무엇인가? 독은 그 양을 적절하게 쓰면 약이 된다. 유럽에서는 가시칠엽수 열매 추출물을 옛날부터 치료약으로 사용해 왔으며 최근에는 동맥경화증이나 부스럼으로 부어오른 종창(腫脹)의 치료에도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칠엽수 열매를 한약제로도 사용한다. | | | ↑↑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심겨진 일본 칠엽수] | ⓒ 동부중앙신문 | |
마로니에하면 서울 동숭동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공원의 이름이 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도 자세히 살펴보면 마로니에가 아니라 일본칠엽수다. 마로니에공원에서 진짜 마로니에를 필자가 확인한 것은, 2그루 정도로 심긴 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이다. 대한민국 최고지성이 모여든다는 대학로 공원에 일본칠엽수를 심어놓고 마로니에공원으로 부르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사람이 마로니에공원으로 의심 없이 부르고 있다. ‘오늘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하는 노래 덕분일까? 두 나무가 비슷하다고 일본칠엽수를 프랑스 이름인 마로니에로 부를 이유는 없다.
일본 칠엽수를 심게 된 내력도 경성제국 대학 시절 일본인 교수가 고향에서 자라는 일본 칠엽수를 가져다 심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러 그루가 있었지만, 서울대학교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낭만, 정열을 상징하는 나무도 이전했다고 한다. 이사한 곳까지는 확인하지는 못했다.
| | | ↑↑ [덕수궁에 있는 마로니에[가시칠엽수] | ⓒ 동부중앙신문 | |
마로니에 공원의 일본칠엽수에 당혹감을 느낀 필자는 국내에 살고 있는 진짜 마로니에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마로니에라고 하여 찾아간 곳은 대부분 일본칠엽수였다. 한국에서 가장 크고 확실한 마로니에가 있는 곳은 덕수궁이다.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에게 선물한 묘목으로 알려져 있다.
덕수궁 석조전 왼쪽 뒤에 있는 2개의 거목이 바로 주인공으로 1913년에 선물했다는 기록으로 보면, 확인된 수령이 100년을 넘는다. 지금도 우람, 장대하게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4월 말부터 5월이면 마로니에꽃이 한창 피어나는 철이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꿀과 향기를 머금고 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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