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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원종태 여주군산림조합장
나는 ‘광복절’이 싫다
김연일 기자 / news9114@hanmail.net 입력 : 2011년 08월 10일(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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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동부중앙신문(주) | | 1945년 8월15일을 기념하는 광복절 올해66주년이 되는 해다. 나는 이 ‘광복절’이라는 명칭이 싫다. 광복절에 대하여 필자는 직접 겪은 바는 없다. 그러나 역사와 그간의 기념일행사 그리고 그 때의 상황을 전하는 사료를 접 할 때마다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위키’ 백과에 광복절에 대하여 한 번 살펴보자.
“정오에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라디오로 중계되었다. 당일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천황 항복방송을 들은 군중들이 그날 바로 태극기를 들고 쏟아져 나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날 거리는 아주 조용하였다고 한다.”(중략)
“물론 그날 중대 발표가 있으니 조선인들은 경청하라는 벽보가 나붙었으나 당시 라디오를 가진 조선인들은 많지 않았고, 천황의 항복 발표 방송은 잡음이 심했고 일본어도 아니고 일본 황족어로 나왔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중략)
게다가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고 3.1 운동 이후로 태극기를 모조리 압수당한지 20년이 넘게 지난 상황이었고, 일본군들이 무기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조선인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내로 나와 만세를 부를 생각을 도저히 할 형편이 못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날은 조용히 지나갔다.”(중략)
“조선인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되찾은 것은 미군이 진주한 9월9일부터다. 그날 오후 4시35분 조선총독부 청사 마당에 오랫동안 게양됐던 일장기가 내려지고 대신 성조기가 올라갔다.”(중략) 9월9일까지도 일본이 강점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흔히 8월15일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거리의 태극기 사진들은 예외 없이 9월9일 미군이 진주한 이후 촬영된 것이다. 자유가 주어졌던 8월16일 단 하루를 제외하면 항복조인식이 거행된 9월9일 오후 4시8분까지 총독부의 강압통치가 계속된 것인데도, 우리는 싸움에 진 것이 아니라 전쟁이 지겨워 스스로 싸움을 끝낸다는 일왕의 조서가 반포된 8월15일을 마치 ‘충량한 반도신민’처럼 우리의 주권을 되찾은 광복절로 높이 받들어 기념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중략)”
‘위키’ 백과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다른 사료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으나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자료에서 1945년8월15일이라는 시점이 일본이 패망한 날이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8월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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