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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 그날의 뜨거운 함성
양병모 기자 / yeoju-21@hanmail.net입력 : 2011년 03월 03일(목) 13:30
지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29명(지방에 있던 길선주·김병조·유여대·정춘수는 불참)이 서울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 민족대표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하였던 역사적인 날이다.

이에 여주군에서 금사면과 북내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었으며, 여러 지역에서 일본에 대한 항쟁이 일었다. 이러한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여주군청과 여주문화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동부중앙신문은 당시의 기록을 보도 한다. (편집자 주)

↑↑ 독립운동가 최영무
ⓒ (주)동부중앙신문
금사면 이포리 만세운동
1919년 4월 1일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에서 여주군의 최대 인원인 3000여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 여주군청 자료에 따르면 이포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것은 이곳에 일제탄압의 상징인 헌병주재소가 있었고, 분노한 군중이 이곳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4월 1일, 이포 헌병주재소 앞에 운집한 3000여 명의 군중은 주재소로 쇄도했다.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헌병은 발포를 개시했고, 주도자 10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일제는 이튿날에도 ‘불온한 형세’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포 헌병주재소에서의 시위는 2일 밤 10시부터 3일 오전 5시까지 계속됐다. 만세운동에 나선 군내 각 면의 군중들은 다시 주재소를 습격했는데, 헌병들은 37명의 시위군중을 체포하고도 ‘불온한 징조’가 계속된다고 보고하며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당시 일제 조선주차군사령관은 육군대신에게 당시의 상황을 “경기도 여주군내 이포에 약 30000명, 안성군내 안성에 1000명, 양성에 2000명의 군중이 폭행하고 심지어 전주(電柱)를 불질러 넘어뜨리고 주재소를 불을 지르고 우편소, 면사무소를 파괴 하고 공용서류, 기물을 파괴하는 등 흉포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기록해 당시의 일본 조선주차군사령관은 주민들의 항쟁운동에 겁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북내면 만세운동
ⓒ (주)동부중앙신문
4월 3일 벌어진 북내면 일대의 항쟁운동에서는 학생 이원기(李元基·사진 왼쪽)와 원필희(元弼喜) 등은 여기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이원기·원필희·조경호·이원문 등은 서울지방의 만세운동에 자극되어 여주에서도 대중적인 만세운동을 벌려야 한다는 목적 아래 계획을 추진했다.

4월 5일에 거사한다는 예정을 잡고 군중 동원을 위하여 이원기의 노력으로 ‘오는 4월 5일 여주 읍내의 장날을 기하여 동 읍내 다락문 앞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할 터이니 그곳으로 모이라’는 요지의 선전문을 작성했다.

↑↑ 독립운동가 이원기
ⓒ (주)동부중앙신문
주동자들은 이원문의 집에서 42매의 경고문을 만들었으며 이상의 선전문, 경고문을 여러 지방에 배부했고, 강영조는 4월 2일 시위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고, 또한 4월 3일에는 북내면 장암리의 원도기(元道基)의 집에서 이원기와 원필희도 태극기를 만들었다.

한편 이들 주동자들은 최영무·강만길·최명용(崔明用)·강영두 등과 더불어 이웃 마을인 현암리(峴岩里) 사람들에게도 참여를 촉구하고 장암리·덕산리(德山里)·외룡리를 왕복하며 군중동원에 노력했다.

그리하여 거사일을 4월 3일로 앞당겨 당일 만세운동 장소인 북내면 당우리(堂隅里) 공북(供北)학교(현 북내초등학교로 추정) 마당에 모인 군중은 약 800명이 됐고, 신륵사 김용식 주지스님을 비롯한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였다.

↑↑ 독립운동가 원필희
ⓒ (주)동부중앙신문
이날 최영무(여주읍 오금리 114), 강두영(여주읍 오금리 114), 최명용(여주읍 오금리 113), 강만길(여주읍 오금리 114), 이원기(북내면 외룡리 298), 이원문(북내면 외룡리 280), 강영조(북내면 외룡리 289), 원필희(북내면 장암리 342), 김학수(북내면 신남리 246), 조경호(강철면 걸은리 128) 등이 주동자로 일본헌병에 체포되어 최영무·이원기는 징역 2년, 강두영·김학수·원필희는 징역 1년 6월, 조경호·이원문은 징역 1년, 그 밖의 사람은 10월의 언도를 받았다.

주내면(현 여주읍)
주내면에서는 구체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나, 군내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계획됐다. 계획의 주도자는 상리(上里)에 거주하던 청년(당시 24세) 조병하(趙炳夏)였다.

기독교도인 그는 손병희 등 민족대표들이 만세운동을 계획, 독립을 선언한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그의 고향인 여주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사실에 분개하여 3월 하순부터 만세운동을 계획했던 것이다.

조병하는 3월 26일과 27일경 주내면 홍문리(弘門里)에 사는 심승훈(沈承薰)의 집을 찾아가 그에게 “각 지방에서는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방에서만 평정함은 무기력한 것이니 이 지방에서도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칠 터이니 참가하라”고 권유했다.

또한 조병하는 4월 3일, 창리(倉里)에 거주하는 이종은(李鍾殷)의 집으로 가서 보통학교 생도인 한백웅(韓伯熊), 한돈우(韓敦愚) 등에게 “경성에서는 학생이 중심이 되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방 학생들이 극히 평온함은 심히 유감이니 제군은 학생들을 선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힘쓰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고, 조병하는 일제에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신면
대신면의 만세시위는 윤촌리(潤村里)에 거주하는 황재옥(黃在玉)에 의해 계획, 추진됐다.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황재옥은 3월 1일 민족대표에 의해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에 대해 내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근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자극을 받고 4월 3일 동리 사람 4, 50명을 자신의 밭으로 모이게 한 후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에 체포된 황재옥은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신면에서 전개된 봉화만세운동은 호서지방을 비롯한 중부지방의 독특한 만세운동 방법으로써, 옛날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에 봉화를 올려 다른 지방에 알려 경계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여주 군내에서 3월 11일부터 4월 15일까지 임순호(林淳豪)의 주도로 각지의 부락 단위로 산에 불을 놓고 만세를 부르는 시위가 전개됐다고 되어 있어, 여주에서도 봉화만세운동이 널리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개군면(현 양평군 소재)
개군면의 만세운동에 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북내면의 만세시위가 있던 4월 3일 곡수에서 3000여 명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거나, 4월 7일 곡수에서 3000여 명이 만세를 부르다가 헌병의 발포로 6명이 피살됐다고 되어 있다.

비록 기록이 정확치는 않으나, 일제측 기록에 의하면 개군면 일원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조선주차군사령관과 조선 총독은 총리대신에게 4월 11일 개군면 일원의 만세시위 주도자를 체포하기 위하여 곡수 헌병주재소에서 상등병 이하 헌병 3명과 보병 2명을 주읍리(注邑里)로 파견했는데, 이때 50여명의 주민이 동리 사람들을 체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들에 대항하자, 발포를 가하여 주민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고 보고했다.

사진제공: 여주군청
양병모 기자  yeoju-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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