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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양평 지평리를 사수하라 ②
지옥같은 전투의 승리 그리고 반세기 영웅들의 귀환
양병모 기자 / yeoju-21@hanmail.net입력 : 2011년 02월 24일(목) 19:25
양평군 지평읍은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5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한 미국 제2보병사단 23연대전투단(Regiment Combat Team,RCT)과 23RCT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중국 인민해방군 39군과 3일간 벌인 격전이었다.

당시 지평리 전투의 승리는 인천상륙작전와 중공군의 2차 공세에 이어 6·25전쟁의 판도를 바꾼 결정적인 전투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또한 1950년 말의 연이은 패배로 떨어졌던 유엔군의 사기가 다시 고무되었으며,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화력과 견고한 방어진지로 물리친 최초의 전투가 되었다. 이후 자신감을 되찾은 유엔군은 다시 북진을 재개할 수 있었다.

본지는 양평군 지평읍에서 역사에 남을 ‘지평리 전투’를 양평문화원의 협조를 받아 참전 용사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2편에 걸쳐 재조명 했다.(편집자 주)

◆연합군의 승리
ⓒ (주)동부중앙신문
페리사가 대위는 대기 중인 탱크와 병사들, 23연대 탱크 4대와 함께 연대를 출발 지평리 남쪽의 여주쪽으로 이동하다 좌측으로 선회 망미산 아래에서 포진 4대의 전차에서 일제히 포문을 열고 중공군 집결지를 포격하기 시작했다.

중공군들은 은폐지역을 포격하는 탱크를 향해 총격을 가했지만, 연합군은 미동도하지 않고 고지정상을 향해 진격을 했다.같은 시각 미 전투단 23연대의 예비 병력들은 연대 참모의 명령에 따라 중공군들이 차지한 고지를 향해 총공격을 시작했다.23연대의 탱크와 예비 병력이 총공격을 벌이고 있는 동안 지원군이 오고 있었다.

마셀 크롬베스 대령이 이끄는 제5기갑연대의 탱크들은 난관에 부딪친 지평리의 23연대를 구출하기 위해 여주에서 지평리까지 2시간 45분 동안 달려왔다.제5기갑연대의 탱크들은 중공군들이 몰려있는 340고지 바로 동쪽을 향해 집중적으로 포화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 포격으로 중공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23연대의 탱크 4대에가 공격하고 있는 397고지의 중공군들도 수세에 몰리자 최후의 발악으로 각종 악기들을 일제히 불고 두드리며, 탱크에 달려들었다.그러나 탱크들은 이들을 향해 포를 쏘고 일제히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적들이 점령한 고지를 압박하면서 진격을 했다.

결과적으로 제5기병연대의 탱크들과 23연대 탱크의 합동공격이 되어버린 지평리 남쪽의 전투는 중공군들의 패배를 안기면서 북으로 몰아내고 있다.적군 대다수는 도주로에서 가장 가까운 397고지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그러나 연합군들은 이미 적들이 집결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크롬메즈 대령은 이때를 기다려 제5기병연대의 21대의 탱크를 이끌고 397고지로 일렬횡대로 다가가면서 포격과 기관총을 사격을 퍼부었다.이 고지는 당초 23연대의 B중대가 위치하고 있었으나 중공군들의 계속된 공격으로 전투력이 약화되어 고지능선 아래로 후퇴해 있었다.

B중대는 제5기병연대의 공격과 함께 다시 반격을 시작 수천의 중공군 팽덕회 부하들은 연합군들의 파죽지세의 공격에 견디다 못해 맹목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그러나 연합군은 이제 공군까지 합류 입체적인 파상공격을 시작 하늘을 가득 메운 전폭기, 전투기들은 네이팜탄을 쏘아 부었고, 기관총으로 무차별 사격으로 중공군들은 산과 들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편 고립되었던 23연대의 장병과 프랑스대대는 무기를 버리고 맨손으로 북쪽으로 도주하는 적병들을 뒤쫓으며 적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15일 밤은 너무나 조용했다. 중공군들로 꽉 찼던 지평리 바깥 산과 들에는 고요함이 흐르고 밤이 깊을수록 고요함은 적요로 변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적요는 요요로움으로 변했다.

3일간의 처참하고 처절했던 지평리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음을 알리고 있다.안실 엘 웨커 대위는 “15일 이후 우리들은 철조망에 걸린죽음들, 철조망을 타고 있는 죽음들, 논바닥에 뒹구는 죽음들, 들판에 쓰러진 죽음들, 산골짜기, 나무 밑, 산등성이에 널브러진 무수한 죽음들, 그 중공군들, 5000명이 넘게 죽어 엎드려 있는 시체들을 확인 하는데 몇일이 걸렸다.

내가 알기로 2만5000명의 중공군들은 5000명도 안 되는 1개 미연대와 1개 프랑스대대가 물리쳤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었던가, 이 전투야 말로 한국전의 전환점으로 체크되어야 함은 물론 승리의 기폭제였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고 기록했다.

◆지평리 전투의 의의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지평리 전투는 1950년 중공군 개입 이래, 유엔군이 처음으로 중공군 대규모 공격에 물러서지 않고 진지를 고수하며 싸움으로써 승리한 최초의 전투였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전사 5000여명과 79명이 포로로 잡히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연합군 또한 94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피해를 입었다.그러나 이전투를 계기로 연합군은 중공군이 6·25전쟁에 참전한 이후 최초로 전세를 만회할 수 있게 돼 재 반격의 기틀을 마련됐다.

이후 연합군은 중공군에 대해 자신을 갖기 시작해 이후 38도선 회복을 위한 작전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중공군은 연합군의 3차 공세에 밀려 서울에서 후퇴에 이어 38도선 밀려 연합군이 다시 38선을 회복하게 됐다.

또한 미군과 프랑스군의 용맹성을 보여준 전투는 2차 대전의 ‘발지전투’와 함께 대표적인 ‘사주방어(All Around Defence)’ 전투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포성이 멈춘 반세기 영웅들의 귀환
ⓒ (주)동부중앙신문
지평리 전투는 미군과 프랑스군의 승리로 끝나고 어느덧 반세기가 흘러 모두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2008년 백발의 노병들이 젊음나이에 목숨을 바쳐 지평리를 사수했던 전쟁의 영웅들이 반세기의 세월을 지나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격전지를 다시 찾았다.

프랑스군으로 참전한 브누와 마흐셀 전쟁영웅은 “당시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순간들이 생생히 떠오른다”며 “6?25전쟁에 참전했던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된다”고 했다. (출처 조선닷컴)

미군 참전용사 도널드 바이어스 영웅은 “다음달 아침이 되니 참호 바로 앞에만 중공군 37명이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며 “어린 나이에 죽음에 대한 슬픔 따윈 없었다. ‘싸움이 언제 끝나나’라는 생각과 ‘차라리 부상이라도 당해 후송되고 싶다’는 마음만 교차했을 뿐, 그래도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고 당시 전투의 참혹함을 회상했다.

또한 “지금의 한국을 지켜보노라면 나와 동료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보냈던 시간과 바친 희생이 충분히 보상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인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고 했다.

참고문헌 : 양평문화원 ‘지평리를 사수하라’
양병모 기자  yeoju-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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