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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봉사는 나의 천직입니다”
이해영 씨, 33년 봉사로 세계 기네스북 등재 … ‘노벨상’ 수상 희망 피력
동부중앙신문 기자 / news9114@hanmail.net 입력 : 2011년 01월 12일(수)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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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네스북 등재자 이해영 씨 대한민국의 문화사절이자 최장 통역자원봉사기록으로 세계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이해영씨는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로 활약하면서 현재 여주군 여주읍 교리에 거주하고 있는 기인이다.
현재 탈렌트 박철, 전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과 함께 경기도 홍보대사로 활발한 역량을 펼치고 있다.
이씨는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500대 1의 경쟁을 뚫고 초청되기도 했다.
이해영씨의 외가는 여주읍 상리다. 그래서 고향에 찾아와 세종대왕릉과 신륵사, 명성황후생가 등이 있는 여주지역의 문화유적을 외국어로 번역해 해외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문을 튼다.
|  | | | ⓒ (주)동부중앙신문 | | 이씨는 여주에서 태어나 가족을 따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유엔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는 외국인 이웃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터득할 수 있었고,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일본 나고야로 발령을 받으면서 7년 동안 국제학교(UN대사 외국인학교)에 다녔고 거기에서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를 익혔다.
한국인은 이씨 혼자였지만 명석함과 총명함으로 반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을 중퇴, 국내로 들어와 단국대학교에서 기계체조를 전공했다.
군을 제대하던 1974년, 통역을 통한 자원봉사의 길이 열렸다. 당시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이던 친구로부터 “한인사회와 의사소통이 필요하니 통역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의사소통이 안돼 답답해 하던 많은 분들이 저로 인해 대화가 되고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돌았죠. 그래서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통역봉사를 위해 귀국해, 그 후 대전엑스포, 2002 한일월드컵,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 등 대형 국제행사에 빠지지 않고 자원봉사에 나섰다. “서울올림픽 때 한국관광공사의 추천을 통해 자원봉사로 활약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다가 한일월드컵, 대전엑스포, 2005 세계태권도대회까지 가면서 시기를 놓쳤죠. 1만5000명이 지원한 2002 한일월드컵 통역자원봉사자 모집테스트에서 1위로 선발된 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씨는 감사장과 상장은 물론, ‘2008 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서 봉사왕으로 뽑혀 국무총리표창과 대통령 표창,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또한, 2007년 12월 30년간 3만4000여 시간의 통역 봉사활동을 기록해 세계 기네스협회 인증을 받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에는 경기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1365’에 뽑혀 1년 365일 자원봉사를 하기로 약속했고, 경기도 자원봉사센터의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오랜 기간 통역봉사를 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있다. “용인 민속촌에서 일본인 관광객과 인연이 돼 술자리를 가졌는데 다음날 일본인들이 숙취로 힘들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숙취 해소에 좋은 콩나물국을 끓여 줬죠. 이로 인해 한국의 정(情)을 그리워해 이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저를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이해영씨의 자원봉사의 내력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다. “선조들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고,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남긴 유언도 너희들이 굶더라도 없는 사람을 도와줘라”는 것이다.
이해영씨는 경기도 홍보대사로 일하면서 몽골문화촌, 다산유적지, 홍유릉, 한국민속촌, 수원화성, 에버랜드, 국회, 청와대 앞 등에서 외국인에게 우리문화를 알리는 통역자원봉사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 씨가 통역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부인의 말없는 내조가 있었다. 이씨는 1988년 올림픽 통역봉사를 할 때부터 직업 없이 봉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미국에 있을 때 빌딩청소, 구두닦이 등 궂은 일로 벌었던 돈을 이동통신업체에 투자해 경제적 부담을 다소 덜어 놨다. “그래도 생계를 꾸려가며, 제가 하는 일에 찬사를 보내고 많은 격려를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아내에게 늘 미안하죠”
2007년 12월 7일 태안에서 발생한 기름띠 사건으로 태안의 바다는 푸른빛에서 검은 빛으로 둔갑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60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기름띠를 없애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추위와 싸워갔다. 새로운 청정바다를 기원하며 바위에 묻어 있는 기름띠를 헝겊으로 닦고 문질렀다.
이때도 이씨의 솔선수범하는 봉사정신이 빛을 발해 ‘국민헌장상’이라는 보답으로 돌아왔다.
“저보다 훌륭한 자원봉사자들이 무척 많았죠. 더 열심히 봉사하라고 저에게 채찍질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외방송에서도 이씨는 유명세를 탔다. 대표적으로 ABC 방송국에서는 “통역봉사로 기네스북에 오른 것은 62억만명 중 하나”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해영씨의 다음 목표는 노벨상이다. “아직도 10년 이상은 통역봉사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제 힘이 남아있는 그 날까지 통역봉사의 끈을 놓지 않을 거예요. 다음 목표는 노벨상입니다” 목표를 갖고 자신의 일에 강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통역봉사자 이해영씨. 그의 온화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을 통해 그의 꿈이 현실로 이뤄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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