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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과 뇌물
이세형 기자 / yeoju-21@hanmail.net입력 : 2010년 09월 30일(목) 14:32
선물과 뇌물

길게 보면 9일 동안이 추석연휴였다. 실컷 놀게 됐다고 좋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긴 휴가일이 지겹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올 추석에 특이한 점은 추석 전 날과 추석 다음 날이 귀성 귀경길로 가장 붐볐다는 점이다.

며느리들의 반란(?)을 남편들이 기꺼이 수용한 결과라고 한다. 명절 스트레스는 어제 오늘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 스트레스는 보나마나 며느리들과 시집식구들과의 마찰에서 나온 것이다. 가뜩이나 살기에 쪼들렸다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꼼짝없이 다 같이 쉬어야 하는 휴일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부엌일을 쉬지 않고 해야 되는 한국적인 현실이, 점점 서구화되는 며느리들의 머리속이나 몸에 익숙지 않은 탓에 큰 마찰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남자들은 고스톱에 술판에 손 하나 까딱 않고 ‘마누라들’을 부리며 군림하고 있던 관습들이 여과 없이 지속되었다가, 요즘 젊은 남편들에 의해서 가족들 중에서도 자기 반려자들에게 ‘이해의 눈길’을 돌린 탓이란다.

“부모, 친척 자식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 마누라’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파급된 결과라고 한다. 무상(無常)은 ‘어떤 것 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보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젊은 부부들의 사고방식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명절은 1년 중 가장 좋은 시절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맘껏 쉴 수 있는 며칠 동안이다. 남 눈치 볼 것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허가기간이다. 그 동안 못해 드린 부모들에게 효도를, 그 동안 소원했던 일가친척들과의 친목 도모를, 꼬박꼬박 들었던 적금을 깨고 신나는 여행을, 요즘 한창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해외 도박에 해외 골프여행을… 평소에 신세 진 사람에게 감사의 선물을, 한 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앞으로의 관계가 돈독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도 어떤 물건을, 더군다나 내일의 출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상사나 그에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어떤 물질을, 내게 도움을 주고 이득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도 거기에 상당한 물건들을 주고받는 계절이기도 하다. 물질이 오고 가는 계절이 명절이기도 한 것이다. 물질을 통해서 마음이 오고 가는 계절, 이 얼마나 편리하고 명확한 표현의 수단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色卽是空 空卽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이야말로 명절을 위해서 태어난 구절인 것 같다. 색(色)은 구체적인 물질을, 공(空)은 만져지지도 보여 지지도 않는 그 어떤 것, 즉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색이 바로 공이요, 공이 바로 색이니라.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라고 해석되는 윗 구절은 바로 명절을 맞이해서 감사의 마음과 보은의 마음과 존경의 마음과 친화의 마음, 화해의 마음 회한의 마음 아부(阿附)의 마음… 등등의 각기 처한 마음의 표현을 예쁜 포장으로 전하고 있는 현상들이다. ‘미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내가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체절명이 딱 맞아 떨어진다. 나의 마음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전해 줄 것인가? 이 마음을 전해 줄 방법이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해 줄 이 마음을 거기에 맞는 물건으로 전해 주어 표시할 수밖에 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있다면 그런 세상은 한 수 위에 세상이다.

▶사과 한 상자가 사과 한 상자의 마음이요, 천만원짜리 위스키가 천만원짜리 나의 마음이다. 정성껏 꾸려온 송편 한 그릇이 그의 마음 인 것이다. 이 것 저 것 생각 않고 마땅히 ‘선뜻 주는 것’은 선물(膳物)이고, 이런 것이 유리 할까 저런 것이 유리 할까 ‘뇌 굴리고 주는 것’은 뇌물(賂物)이란 말이 우수개소리가 아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필요에 따라 주는 물건이 선물도 되고 뇌물도 되는 것이다. 그냥 주고받는 물건 속에는 복잡 미묘한 얼키고 설킨 이해관계가 숨어 있는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뇌물일 경우가 많을 것이고,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선물은 순수한 선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은 그냥 무덤덤하게 한 세상 살아가는 힘없고 희망 없는 가난하거나 노인들이기에 명절이 명절이 아니고, 오며가며 시간을 맞이하는 슬픈 과객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을 경우, 상대를 분별하여 주면 인과(因果)에 걸려 반드시 주고받는 결과에 얽매이게 되고, 상대를 분별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냥 주게 되면 인과가 발생할 대상이 사라지므로 어떤 결과에서도 자유스러워진다고 옛 스승들은 밝히고 있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너무 자기 이익에만 빠져 있는 이 세상에서 한번 쯤 생각해 보라는 의미가 클 것이다. 증일 아함경 ‘광연품’에 휴식(休息)에 대한 설명이 있다. 「휴식이란 마음의 생각이 쉬고/ 뜻이 조용하고 밝으면서도/ 경솔하거나 사납지 않고/ 항상 마음을 온전하게 해/ 뜻은 한가히 있기를 즐겨 하며/ 언제나 방편을 구해/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고/ 지나친 광명이나/ 위로 오름을 탐하지 않기를 생각 하는 것. 요번 추석 명절에 ‘휴식’을 충분히 취하셨으리라 믿는다.

이성희 본보 칼럼니스트
이세형 기자  yeoju-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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