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후보는 단풍나무다. 붉은 잎을 한껏 펼치며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가을 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까? 시인들은 내 붉은 잎에 사랑을 노래하고, 사진작가들은 내 앞에서 셔터를 누르느라 바쁩니다. 색깔의 깊이와 우아함, 잎의 세련된 곡선까지! 가을의 주인공은 바로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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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조각 잎이 특징인 복자기 단풍)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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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복자기가 나섰다. 잎 세 장이 한 묶음으로 달린 독특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붉은색에도 품격이 있소. 내 잎은 노란빛에서 주황빛으로, 다시 진홍빛으로 물들며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합니다. 세 장의 잎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도 나만의 매력입니다. 혼자 빛나는 것보다 서로 다른 빛깔이 어우러질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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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풍나무 와 은행나무 한자리에 서다)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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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은행나무가 황금빛 부채를 펼치며 우아하게 등장했다.
“붉은색만으로 가을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내 잎이 노랗게 물들면 숲속에 황금비가 내리는 듯하지요. 내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됩니다. 아름다움에 오랜 역사의 무게까지 더했으니, 단풍의 여왕을 넘어 천하의 여왕으로 도전할 만하지 않습니까?”
숲속에서 웃음이 터졌다. 은행나무는 그 웃음마저 황금빛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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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르크의 날개가 돋보이는 화살나무 단풍)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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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후보 화살나무는 수줍게 앞으로 나왔다. 다른 나무들보다 몸집도 잎도 작았지만, 가지의 코르크 날개가 독특했다.
“저는 키도 크지 않고 잎도 작습니다. 하지만 가을이면 제 잎도 곱게 붉어집니다. 큰 나무들 사이에서 저를 지나치는 분들도 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제 아름다움도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누군가는 큰 키로 시선을 끌고, 누군가는 작은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붙잡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이 멀리서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야말로 단풍 중의 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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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을 수놓은 대왕 참나무 단풍)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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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후보는 갈참나무였다. 화려한 붉은색이나 황금빛 대신 갈색과 황갈색으로 물든 잎을 내보였다. “나는 사람들을 눈부시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내 열매 도토리는 숲의 여러 생명에게 겨울을 이겨낼 힘이 됩니다. 아름다움이란 눈을 즐겁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른 생명을 살리고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힘도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던 나무들도 조용히 잎을 흔들었다.
드디어 심사 결과를 발표할 시간이었다. 숲속의 새와 다람쥐, 바람과 햇살이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뜻밖에도 심사위원장은 어느 한 나무에만 왕관을 주지 않았다.
“올해의 단풍 여왕 선발대회는 공동 우승입니다! 단풍나무의 붉음은 열정을, 복자기의 다채로운 빛깔은 조화를, 은행나무의 황금빛은 풍요를, 화살나무의 작은 잎은 겸손을, 갈참나무의 갈색과 나눔은 깊이와 넉넉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하나만을 최고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으니 모두가 우승자입니다.”
숲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붉은 잎과 황금빛 잎, 작고 섬세한 잎과 묵직한 갈색 잎이 바람 속에서 어우러졌다. 가을 숲은 그렇게 하나의 거대한 화폭이 되었다.
사람들은 가장 붉은 단풍, 가장 노란 은행잎, 가장 화려한 풍경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숲을 오래 바라보면 깨닫게 된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어느 한 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뛰어나다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빛깔이 서로 어우러져 비로소 가을이라는 작품을 완성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다. 누구는 재능으로, 누구는 성실함으로, 누구는 묵묵한 배려로 저마다의 달란트가 조화를 이룬다. 올가을, 당신은 어떤 빛깔로 물들고 있는가? 왕관을 쓰지 않아도 좋다. 남보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계절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곁에 있는 이의 빛깔까지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면 당신 역시 가을 숲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여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