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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 해설가의 나무 이야기 - 명자나무(산당화)-
절대 뜰 안에 심으면 안 되는 꽃
유미란 기자 / news9114@daum.net입력 : 2026년 04월 21일(화) 13:47
찰나의 눈짓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강렬한 색채가 있다. 잔인할 만큼 시린 초봄의 공기를 뚫고, 마치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이 혈색으로 피어난 듯한 꽃. 바로 명자꽃(산당화)이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단아하면서도 가슴 저릿한 슬픔을 머금은 이 꽃의 생애와 그 속에 흐르는 오래된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 (슬픈 사연을 간직한 붉은 명자꽃)
ⓒ 동부중앙신문

명자꽃{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은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2미터 정도 자라며, 우리에게는 '산당화(山棠花)'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한 나무다. 이른 봄, 잎이 돋아나기도 전에 가지 끝에 맺히는 꽃망울은 마치 갓 시집온 새색시의 수줍은 연지곤지와도 같아 보인다.
특이한 것은 명자꽃의 가지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 몸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처절한 방어기제다. 만지려 하면 상처를 남기는 그 자태는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고귀함'을 상징한다.

가지 사이에 돋은 가시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남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상처의 가능성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수록, 그 사랑은 우리를 더 쉽게 다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의 가시를 키운다. 가까이 오되 함부로는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다. 명자나무는 그 모순을 숨기지 않는다. 꽃과 가시를 함께 내보이며, 그것이 삶의 본래 모습이라고 말한다.
명자꽃은 연분홍에서부터 타오르는 듯한 진홍색, 그리고 고결한 흰색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특히 햇살을 머금은 붉은 명자꽃잎은 반투명한 비단처럼 빛난다. 보는 이의 넋을 쪽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어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 (아름다운 명자는 가시를 품고 있다.)
ⓒ 동부중앙신문

옛사람들은 명자꽃을 가리켜 애기씨꽃나무, 명자나무, 가시덕이라고도 불렀지만, 역설적으로 이 꽃은 집안 뜰 안에 심는 것을 금기시했다. 고혹적인 색상이 봄날 아녀자의 가슴을 흔들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명자꽃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명자꽃이 활짝 피면 집안 여인들의 마음이 설레어 바람이 난다.’라는 속설이 이 나무를 집안에 가꾸지 못하게 한 이유로 설명된다.
이 민담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명자꽃이 가진 생명력과 관능미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여인들의 억눌린 욕망을 자극할 만큼, 명자꽃의 붉은빛은 거부할 수 없는 해방의 상징이었다.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게 만드는 그 붉은 유혹은, 꽃이 아닌 여인의 심장에 불을 지르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 ( 울안에 심을 수 없었던 금기의 꽃)
ⓒ 동부중앙신문

대개의 꽃은 그 꽃에 어울리는 전설이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기다림'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명자꽃에도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다.
먼 옛날, 한 마을에 '명자'라는 이름의 어여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정혼한 정인을 전쟁터에 보내야 하는 이별의 아픔을 간직해야 했다. 매일같이 정인을 그리워하며 이별했던 마을 어귀에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비보(悲報)뿐이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 쇠약해진 명자에게 비극이 찾아온다. 끝내 다시 정인을 만나지 못하고 기다리기로 약속한 그 길목에서 그만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이듬해 봄, 그녀가 묻힌 자리에서 가시 돋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더니 피처럼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정인을 향한 그녀의 일편단심과, 다가오는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가시 돋친 절개가 꽃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그녀의 이름을 따 ‘명자꽃’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날 명자꽃은 공원이나 정원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 되었다. 하지만 그 붉은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여인들의 그리움과 못다 한 이야기가 진한 색으로 숨 쉬고 있다.
올봄, 당신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명자꽃 한 송이를 만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뜨거운 심장의 고동이자, 잊힌 전설이 건네는 애틋한 위로일 것이다. 해가 가고 다시 봄이 오면 그때마다 진한 붉은색으로 오직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 (명자꽃 봉오리는 오직 당신만 바라보는 듯하다.)
ⓒ 동부중앙신문

가을이 되면 이 나무는 단단한 열매를 맺는다. 흡사 모과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품종의 사과로 오인하기도 할 정도다. 모양 그대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 열매는 시간을 들여 달이고 우려내야 비로소 은은한 향을 내어준다. 삶의 결실도 이와 닮아 있다. 당장 달콤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의미를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결과를 서둘러 맛보려 하지만, 반드시 ‘시간이라는 불’ 위를 지나야만 완성된다. 명자는 삶의 순리를 꽃으로 피우고 열매를 맺어가며 수천 년을 살아온 교훈을 전한다. (숲 해설가 원종태)

↑↑ (명자꽃 열매는 모과처럼 사과처럼 보인다.)
ⓒ 동부중앙신문
유미란 기자  news911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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