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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 해설가의 나무 이야기 - 진달래꽃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선사하는 꽃
유미란 기자 / news9114@daum.net입력 : 2026년 04월 09일(목) 16:37

한민족의 흥(興)과 한(恨)이 스며있는 꽃 진달래
봄은 늘 소리 없이 오지만, 빛으로 먼저 자신을 알린다. 그 빛은 해마다 우리 강산을 물들이고 연분홍이 산록을 뒤덮으면, 우리는 그것을 주저 없이 진달래라 부른다. 이른 봄 산자락에 피어나는 꽃은 단순한 계절의 장식이 아니다. 오래도록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한(恨)과 흥(興)을 동시에 품어온 정서의 표상이다.

진달래(학명: Rdendron mucronulatum Turcz.)는 갈잎, 떨기나무로 한국이 원산이다. 콧대 높은 영어권에서도 코리안 로도덴드론(“Korean rhododendron)으로 부른다. 작은 키의 나무지만 화려한 온실 속의 꽃이 아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도, 정성껏 돌보는 손길도 없다. 오히려 메마르고 산성도가 높은 척박한 땅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린다. 다른 나무들이 잎을 틔울 준비를 하는 사이, 진달래는 분홍 입술을 살포시 열면서 꽃을 내어놓는다. 잎보다 꽃이 앞서는 이 역설적인 순서는, 어쩌면 생의 본질을 향한 과감한 선택처럼 보인다. 모든 에너지를 가장 빛나는 순간에 쏟아붓는 방식을 택한다.


↑↑ (진달래의 개화)
ⓒ 동부중앙신문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 꽃을 단순히 ‘예쁜 꽃’으로 부르지 않는다. 먹을 수 있는 꽃, 곧 ‘참꽃’이라 불렀다. 독성이 있어 입에 댈 수 없는 철쭉과 달랐다. 진달래는 보릿고개 시절 허기를 달래주던 생명의 일부였다. 꽃잎 하나가 곧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진달래는 자연을 넘어 삶 그 자체에 가까운 존재였다. 더구나 모든 것이 불타버린 산불의 폐허 위에서도 가장 먼저 싹을 틔운다. 진달래의 강한 생명력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가장 처참한 자리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 그것은 절망의 끝에서 시작되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진달래는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온 것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신라 성덕왕 때의 설화로 전해지는 ‘헌화가’는 그 대표적인 예다. 강릉으로 가던 수로부인이 절벽 위에 핀 꽃을 보고 감탄하자,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순간 한 노인이 목숨을 걸고 벼랑에 올라 그 꽃을 꺾어 바쳤다. 그리고 짧은 노래 한 수를 남긴다. 이 이야기에서 진달래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인간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행동을 끌어내는 ‘초인적 힘’으로 자리한다.



↑↑ (이른 봄, 꽃과 나비의 만남)
ⓒ 동부중앙신문


또 다른 이름, 두견화(杜鵑花)에는 더욱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중국 촉나라의 망제가 나라를 잃고 죽은 뒤 두견새가 되어 밤마다 “귀촉도(歸蜀道)”를 울었다는 전설이다. 그 피 맺힌 울음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진달래다. 이 설화 속에서 진달래의 분홍빛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을 향한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소망이 스며든 처절한 시간의 색채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한 편의 시로 모인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진달래를 한국인의 정서 속에 깊이 새겨 넣은 작품이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는 구절은 붙잡지 못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떠나는 이를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는 체념이 아니라, 슬픔을 넘어선 품위이며, 사랑의 마지막 방식이다. 밟히면 물이 배어 나오는 꽃잎처럼, 이 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사정없이 건드린다.




↑↑ (진달래와 함께 핀 벚꽃이 산맥을 이룬다.)
ⓒ 동부중앙신문


생각해 보면 진달래는 늘 가장 먼저 피어난다. 추위가 완전히 가시기 전, 봄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순간에 자신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가장 배고픈 시절 사람의 곁을 지킨다. 산천초목이 왕성한 계절에는 없는 듯이 살아가지만 가장 슬픈 이야기 속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래서 이 꽃은 단순히 자연 일부가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함께 웃고 울며 함께 살아온 존재라 할 수 있다.

올봄, 산자락에 핀 진달래를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늦춰 보기를 권한다. 그 연분홍빛은 결코 가벼운 색이 아니다. 그 안에는 수천 년의 이야기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꽃 앞에서 오래전 누군가가 미처 다하지 못했던 말을 조용히 듣게 될지도 모른다. 움츠렸던 마음은 사라지고 가슴 속을 울리는 노래가 봄 하늘을 향해 피어오른다.

↑↑ (분홍 진달래와 함께 핀 흰 진달래)
ⓒ 동부중앙신문


‘봄이 오면’
시 김동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 캐는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 주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꽃 되어서 웃어본다오
↑↑ (진달래 동산에는 김소월이 함께 산다.)
ⓒ 동부중앙신문

유미란 기자  news911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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