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 서 있는 거목 한 그루가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회백색 껍질이 마치 종이를 겹겹이 붙여놓은 듯 벗겨져 있고, 그 질감은 세월의 기록처럼 손끝에 남는다. 이 나무가 바로 백송(白松)이다. 이천 백사면의 백송, 창경궁의 백송, 고양시 송포의 백송, 그리고 추사 김정희 고택의 백송까지,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야기’를 품은 백송들이 자리하고 있다. 백송은 단순한 희귀 수종을 넘어, 이 땅에 남겨진 역사와 그 시대의 흔적을 조용히 증언한다. 백송(학명:Pinus bungeana Zucc. ex Endl.)은 소나뭇과에 속하는 바늘잎 늘 푸른 큰 키 나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붉은빛 소나무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중국 북부가 원산인 외래 수종이다. 가장 큰 특징은 나무껍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장하면서 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져 나가며 흰색, 연회색, 옅은 녹색이 어우러진 무늬를 만든다. 이 독특한 나무껍질 덕분에 ‘백골송’, ‘탈피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의 소나무의 침엽이 2개인데 비하여 백송은 3개씩 달린다. 수고는 15미터 내외로 크지 않지만, 수형은 단정하고 위엄이 있다. 추위에 견디는 힘과 마름견딜성, 공해에 적응하는 힘이 뛰어나 도시에서도 비교적 잘 견딘다. |  | | | ↑↑ (겨울을 즐기는 백송, 푸른 잎과 하얀 줄기가 뚜렷하다) | | ⓒ 동부중앙신문 | |
그렇다면 이 중국의 나무는 어떻게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까. 백송의 국내 유입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청과의 외교 사절단, 즉 연행사(燕行使)를 통해 종자나 묘목이 들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백송은 단순한 관상수라기보다 상징성이 강한 나무였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궁궐, 사찰, 문인 정원에 심어졌는데, 껍질이 벗겨지며 드러나는 흰 속살은 ‘본질의 드러남’, ‘속됨을 벗어남’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나무껍질의 하얀빛이 진할수록 인기가 있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백송은 단순한 외래종이 아니라, 유학적 수양과 군자의 품격을 상징하는 고결한 나무였던 셈이다. 이 상징성은 재동 백송에서 특히 또렷하게 드러난다. 재동 백송은 오랜 세월 교육과 관련되거나 유학자들의 거처였던 공간에 자리하며, 개화파 박규수의 집터이기도 했던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600여 년) 백송으로 알려져 있다. 한양 도성 안에 심어진 이 나무는 단순한 조경수가 아니라, 외교와 학문, 그리고 문화적 교류의 산물이었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렸지만, 이질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조선의 풍경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  | | | ↑↑ (하얀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보이는 이천 백송) | | ⓒ 동부중앙신문 | |
이천 백사면의 백송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나무는 조선 시대 참판을 지낸 민달용의 묘소에 그 후손이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이 나무가 상서로운 나무로 오랫동안 지역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백송은 이천 사람들에게 단순한 보호수가 아니라, 청렴과 지조의 경건한 상징으로 인식됐다. 추사 김정희 고택의 백송은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추사는 유배와 고난 속에서 학문과 예술의 본질을 끝없이 파고든 인물이다. 그의 고택에 자리한 백송은 마치 껍질을 벗기며 속살을 드러내는 나무의 생태처럼, 형식과 권위를 벗고 본질로 향했던 추사의 정신을 닮았다. 학자들은 추사가 백송의 상징성을 의식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창경궁의 백송 역시 왕실 공간에 심어진 나무로서 의미가 깊다. 궁궐의 백송은 외교적 교류의 산물이자, 왕실의 격과 품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침엽수이면서도, 끊임없이 껍질을 벗는 백송의 모습은 ‘변하지 않기 위해 변화하는 존재’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  | | | ↑↑ (청와대 경내에 대통령의 기념식수 백송) | | ⓒ 동부중앙신문 | |
현시대에도 백송은 고관대작이 즐겨 심는 기념 수종의 자리를 차지한다. 역대 대통령이 근무하던 청와대를 비롯한 기념비적 장소에서 어렵지 않게 백송을 만나볼 수 있다. 백송은 희귀성과 상징성으로 인해 노거수들은 천연기념물 또는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백송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보호의 대상이라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나무는 말없이 묻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벗어내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끝내 벗어내지 못한 채 껍질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가? 스스로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세월을 축적하며 하얗게 드러난 백송의 줄기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수백 년을 건너온 시간과 사유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백송은 이 땅에 뿌리 내린 외래종이지만, 이제는 우리 역사와 정신 일부가 되었다. 나무 한 그루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오래된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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