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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해설가의 나무 이야기 - 호두나무
호두나무 한그루 백성을 먹여 살린다.
유미란 기자 / news9114@daum.net입력 : 2025년 11월 25일(화) 16:58
↑↑ (천안 광덕사의 호두나무 1998년 천연기념물 398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높이는 20m, 가슴높이의 둘레는 4m이다.)
ⓒ 동부중앙신문
세상에는 진기한 열매, 그윽한 향기, 아름다운 꽃으로 인간을 유혹하는 나무가 많이 있다. 그중 과거(科擧)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신의 열매’로 불리는 이 열매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중앙아시아, 특히 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카스피해 인근이 원산지로 추정되는 호두는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신의 음식’이라 부르며 왕과 귀족들에게만 허락된 지체 높은 과일이었다. 껍질 속의 ‘두 개의 뇌 모양’을 지혜의 상징으로 여기고 신성시하여 ‘왕의 열매’로 떠받든다.

호두나무(학명: Juglans regia L.)는 가래나무과에 속하는 넓은 잎,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다. 높이는 20여 m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유청신이 원나라 사신으로 다녀올 때 가져와 천안의 광덕사에 파종한 것이 호두나무의 ‘시목(始木)’이라며 족보까지 언급되는 나무다. 현재는 400여 살로 추정되는 호두나무가 천연기념물 398호로 지정되어 있다. 후계목인 셈이다. 목재는 가구재나 장식재로 쓰인다. 지방에서 ‘호도나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호도수(胡桃樹), 강도(羌桃), 당추자(唐楸子), 핵도(核桃) 등으로도 불렸다.

호두나무는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동과 서로 퍼져 나간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을 통해 그리스로 전해진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페르시아 너트’라 부르며 신전의 제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로마 제국은 이 나무를 널리 심어 유럽 전역에 전파시켰고, 로마에서는 ‘주피터의 열매’라는 별칭까지 붙여 ‘신의 열매’라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는 아메리카로 전파되고 호두나무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호두나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도 이동한다. 중국에는 한(漢)나라 무제 때(기원전 2세기) 서역(西域) 교류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胡, 오랑캐 호)의 땅에서 온 열매’가 홉사 복숭아를 닮았다는 뜻에서 ‘호도(胡桃)’라 이름을 붙였다. 중국 민간에서는 ‘호두를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라는 속설이 생겨 문인과 학자들이 애용하고, 당나라 시기에는 불교 사원에도 심어 장수와 지혜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조선 시대에는 호두를 매우 귀하게 여겨 진상품(進上品)으로 취급된다. 또한 호두는 과거 시험을 앞둔 선비들에게 장원을 기원하면서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고, 한양의 일부 집터에서는 호두나무를 마당 한쪽에 심어 자손의 지혜와 장수를 기원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러한 믿음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중요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이를 섭취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속설이다. 두 개의 뇌처럼 생긴 열매 모양이 총명과 학문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호두나무를 심은 마을에서는 총명한 사람이 많이 태어나 지혜와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설화까지 전해져 온다.

↑↑ (천안 광덕사에 호두나무를 들여와 심은 것으로 알려진 유청신의 공덕비)
ⓒ 동부중앙신문
한국의 최초 호두나무 재배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안 광덕사와 천안의 명물로 자리 잡은 호두과자는 이러한 믿음과 역사의 산물이다. 고려 시대 유청신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호두나무를 광덕사에 심어 오늘날까지 대를 이은 나무가 그 역사를 증명한다. 불교 경전에서는 호두를 ‘반야과(般若果)’ 즉 ‘지혜의 열매’라 부르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자의 마음을 비유하는 상징물로 쓰였다는 것을 참작하면 호두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적절한 장소다.

↑↑ (400여 풍상을 겪으며 우듬지에 수술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 동부중앙신문
필자가 이 나무를 친견하고자 방문하였을 당시, 호두나무의 우람한 자태는 세월을 지켜온 흔적이 역력했다. 거목 앞에 서면 늘 경이로움이 앞선다. 잠시 우러러보며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뿌리 쪽부터 우듬지, 가지, 수술 자국,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마음에 담는다. 그리고 팔을 벌려 나무를 안아본다. 수백 년 호두를 생산하면서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만들어낸 주역의 모습은 경건하고 우람하다.

호두나무에서 호두과자가 탄생하기까지는 선구자의 피나는 노력이 뒤따른다. 일제강점기 일본식 카스텔라 기술과 함께 호두가 결합하여 생긴 문화 융합의 산물이다. 선구자는 ‘천안 특산물인 호두를 넣어 새로운 과자를 만들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몰두한다. 호두의 형태를 참고하고, 속 재료를 천안 호두와 팥앙금으로 바꾸며 새로운 간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호두 모양 틀을 직접 제작해 굽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호두과자’가 최초로 등장한다. 호두과자는 국민 간식으로 떠오르고 천안 명물로 등극한다.

선구자의 노력은 한 개인의 영광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다. 누구는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 만들고, 또 누구는 위대한 것을 시시하게 여기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고장에서 위대함을 넘어 거룩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유미란 기자  news911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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