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전설속의 무릉도원을 재현한 계림의 세외도원(世外桃園) | | ⓒ 동부중앙신문 | |
끝나는 삶, 끝나지 않는 욕망, 불멸의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리며 삶을 시작할 때 이미 그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살고 싶다’는 염원을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곤 한다. 인간 마음속 ‘끝나지 않는 욕망’을 채워줄 신기한 열매가 어딘가에는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이 열매를 보았다는 사람, 드디어 먹었다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그 신비한 열매를 불멸의 복숭아라 부르며 세상에 퍼져 나간다. 복사나무(학명: Prunus persica (L.) Batsch)는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한다. 4~5월에 꽃을 피우며 잎은 넓고 길며 낙엽이 지는 중간 키 나무다. 이 나무에 달리는 열매가 복숭아로, 열매 이름을 붙여 복숭아나무라고도 부른다. 한민족과는 오랜 역사를 함께해 온 나무다. 한자로는 복사꽃을 도화(桃花) 등으로 쓰며, 열매의 모양이나 색깔에 따라 백도, 황도, 수밀도, 열매에 털이 없다는 천도가 있다. 복사꽃은 그 빛이 매우 진하다. 붉은빛의 꽃빛깔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과 조화를 이루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복사꽃이 필 때면 으레 전설상의 이상향(理想鄕)을 떠올린다. 속세와 떨어진 선경(仙境)의 사회, 복사꽃이 만발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은 전쟁도 다툼도 없고 몇백 년을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의 고향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음은 물론 세금도, 저급한 정치인의 술수도 없는, 그야말로 별천지다. |  | | | ↑↑ (잎이 솟아나며 만개한 복사꽃) | | ⓒ 동부중앙신문 | |
복사꽃 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릉도원의 이상향만이 아니다. 귀신나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신령스러운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다. 복사나무는 민간신앙에서 축귀(逐鬼)의 효능을 지닌 것으로 믿었다. 잡귀를 쫓을 때 복사나무의 가지를 사용했다. 그 열매인 복숭아도 신선한 기능을 간직한 것으로 여겼다. 복사나무는 꽃도 예쁘고 열매도 맛이 좋지만, 집안에 심지 않는다는 금기도 여전하다. 요사스러운 기운을 쫓아내고 잡귀를 몰아내는 힘이 있는 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복숭아를 제사에 쓰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잡귀와 함께 제사상으로 모셔야 할 조상신마저 쫓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복사나무와 복숭아는 특별한 쓰임새도 누렸다. 이 나무로 도장을 만들어 호부(護符)로 지니기도 했다. 천도 모양의 연적과 장식, 궁중의 천도 그림 병풍, 천도 무늬의 금박 등은 모두 장수의 상징이나 호부 또는 부적의 목적을 지닌 것이다. 복숭아 열매는 무화(巫畵)나 제당(祭堂)의 당화(堂畵)에도 나타나는데, 시녀가 복숭아를 따거나 쟁반에 담아 신에게 바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즉, 복숭아가 천상의 신이나 신선들이 먹는 신성한 과실이었음을 상징한다. 한편 예로부터 복숭아나 그 꽃은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되기도 했다. 그 과일을 먹으면 얼굴이 예뻐진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녀(桃花女)는 자용염미(姿容艶美)하여 신라 진지왕이 반할 정도였다. 복숭아는 그 형태가 여성의 심벌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복숭앗빛은 그 꽃빛깔을 나타내지만, 이보다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의미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근래의 유행어인 ‘핑크빛’이라는 말도 남녀 간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  | | | ↑↑ (잘 익은 복숭아의 색채는 유별나다.) | | ⓒ 동부중앙신문 | |
전 세계의 신화 속에는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상상력이 담겨 있지만, 동양의 복숭아는 유별나다. 중국 전설의 서왕모가 키우는 복사나무에는 3천 년에 한 번 복숭아가 달리며, 이 복숭아를 먹으면 신선이 되어 불로장수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서유기』에서는 손오공이 이 복숭아를 훔쳐 먹고 하늘나라를 뒤집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동방삭의 전설에서도 복숭아를 먹고 삼천갑자(18만 년)를 살았다는 이야기는 복숭아의 신비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처럼 복숭아가 수많은 과일 중에서도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신화적 배경, 외형적 특징, 그리고 실제 효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평가다.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문화적 상징성과 상상력의 결합이 불멸의 복숭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불멸을 꿈꾸는 것은 단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잊히기를 원하지 않고,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불빛처럼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을 더 충실히 살아가려 하고, 사랑하고, 배우고, 표현하려 애쓰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불멸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던 강렬한 흔적을 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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