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강천섬의 양버들, 이곳도 한때는 포플러 단지였다.) | ⓒ 동부중앙신문 | |
우리 곁에 함께했던 나무 포플러, 이 나무는 한때 한반도의 도로와 천변 공터를 뒤덮었다. 늘씬한 키에 쭉쭉 자라는 속성수로 심기만 하면 돈이 생긴다고 여겨질 정도로 인기 있는 나무였다. 도로변의 가로수는 물론 경작하지 않는 땅에는 너도 나도 이 나무를 심었다. 한자문화권에 익숙한 우리의 선조들은 이나무를 서양에서 들어온 버들이라는 이름의 양버들 이라고도 부르고, 미국에서 드려온 포플러는 미국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미류(美柳)나무로도 불렀다. 발음이 어려운 ‘미류나무’는 자연스럽게 ‘미루나무’ 로 불리게 된다. 포플러는(Poplar)는 포풀루스속(학명: Populus)의 나무를 총칭하는 말이다. 포플러는 '대중'‘인민’이라는 뜻으로서 이 나무 밑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데서 그 어원을 찾는다. 생장이 빨라 속성수로 불린다. 조건만 잘 맞으면 목재 생산 속도가 빠르고, 꺾꽂이도 잘되며, 가꾸기가 쉬운 나무다. 국민관심이 집중되는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대기정화는 물론 오염된 토양 정화에도 효과가 뛰어나다. 미루나무 보다 더 빨리 크게 자라는 나무가 나타나자 한국은 이태리에서 이 나무를 대거 수입한다. 이 나무가 자연교잡종인 이태리포플러로 불리는 나무다. 흥미로운 것은 이태리포플러로 불리는 나무가 본래 이름은 캐나다포플러 (학명: Populus × canadensis Moench)라는 것이다. 이태리포플러는 양버들(Populus nigra)과 미루나무(Populus deltoides)의 자연 발생 교잡종을 캐나다포플러 라고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이를 '캐나다포플러'(Canadian poplar)라고 부른다. 한국으로 상륙하면서 '이태리포플러'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즉, 원산지는 캐나다이지만, 이탈리아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면서 ‘이태리’라는 이름이 포플러 앞에 붙은 것이다. 꽃말은 ‘비탄, 애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포플러는 많은 에피소드가 함께한다. 그중 하나다. 1966년 3월 봄 여주가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이 다녀갔는데 면전에서 욕을 바가지로 퍼 부었다는 것이다. 소문은 일파만파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이를 전해들은 군수와 서장은 사색이 되어 청와대를 찾아가 백배사죄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훗날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다음 글은 당시 대통령을 보좌하던 비서관이 기고한 글의 일부임을 밝혀둔다. 1966년 3월 6일, 일요일 박정희대통령은 포플러 단지 시찰을 건의하자 반색을 했고, 세 사람은 곧 점퍼 차림으로 지프차에 올랐다. 민정 시찰을 겸한 이른바 대통령의 잠행(潛行)이다. 지프는 서울을 벗어나 여주 남한강변의 포플러 단지에 도착했다. 박정희는 쭉쭉 뻗은 나무들을 두루 살피고는 두 팔에 안아 보고, 흔들어 보고, 매달려 보면서 무척 흡족해했다. |  | | ↑↑ (우람한 이태리포플러 그늘이 시원하다.) | ⓒ 동부중앙신문 | |
시간이 훌쩍 지나 4시 반경이 되었다. 3월인데 먼 산에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옷깃을 파고드는 석양의 강바람은 쌀쌀해서 으슬으슬 추웠다. 귀로에 오른 지프가 여주의 한적한 길에 접어들자 허름한 주막이 나타났다. 누추하고 전깃불도 없이 컴컴한 주막이었다. 메주 냄새가 물씬 나는 방으로 들어가니 아랫목이 따뜻해서 몸을 녹이는 데는 그만이었다. 얼마 후 50대의 주모는 찌개 안주와 따끈한 막걸리를 가져와 손님들에게 한 사발씩 권했다. 손님들과 막걸리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주모가 박정희를 요리조리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박정희의 무릎을 탁 쳤다. “아이고, 이 양반이 꼭 박정희를 닮았네. 신문에서 본 그대로야. 똑같아.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몰라.” 순간, 동행자들은 긴장했다. “주모! 내가 왜 박정희 닮아? 모두들 박정희가 날 닮았다고 하는데.” 박정희가 능청을 떨자, 비로소 킥킥 웃음이 나왔다. 주모는 손님들 눈치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얼굴이 불콰해지도록 술상 앞에 꼭 붙어 앉아 이것저것 참견하다가 고달픈 세상살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더니 정부에 대해 욕사발을 퍼붓기 시작했다. 동행자들은 술기운이 싹 가시면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박정희가 흥에 겨워 추임새를 넣어주니 잔뜩 기세가 오른 주모는 군수, 경찰서장, 지서 주임에서 아무개 순경까지, 또 면장과 면서기들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죄상’을 낱낱이 폭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박정희로 돌아왔다. “박정희는 새까맣고 조그만 것이 어찌 그리 간이 큰가 몰라. 하도 단단해서 돌로 쳐도 안 죽을 거야.” 동행자들은 오싹해서 그저 주모의 입방정이 끝나기만 고대하는데, 박정희는 파안대소하며 연신 맞장구를 쳤다. (중략) 이날 이후 여주 지방에서는 ‘박정희가 날 닮았지!’ 하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여주 강변 포플러 숲을 배경으로 한 홍보물도 나돌았다. 헐벗은 국토를 녹화하는 데 포플러가 일등공신으로 등장한 것은 물론, 전국 강변에는 속성으로 자라는 이태리포플러가 빠르게 자라 강변을 가득 메웠다. 이태리포플러는 펄프, 나무 도시락, 젓가락, 성냥개비, 아이스크림 바, 이쑤시개 등의 원료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고소득 나무로 각광받는다. 이렇게 산업화 과정의 효자였던 이태리포플러는 이제 산업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늘은 여전히 넉넉하고 기억은 짙게 남아 있다. 남한강변에 선 몇 그루의 거목은 영광의 시간을 기억하고, 물결처럼 밀려가는 시대를 조용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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