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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해설가의 나무이야기 -살구나무
여름을 기다리는 “살구나무”
유미란 기자 / news9114@daum.net입력 : 2025년 07월 09일(수) 14:45
↑↑ (살구꽃은 꽃이 피면 꽃받침이 뒤로 젖혀진다.)
ⓒ 동부중앙신문
아침 햇살이 대지 위로 번질 무렵, 살구나무 가지 끝에 맺힌 노란 열매 하나가 바닥에 톡 하고 떨어진다. 향기로운 내음이 풀잎을 타고 퍼져 나온다. 어린 날, 맨발로 달려가 손에 쥐었던 그 순간의 감촉이 문득 살아난다. 입에 넣자마자 퍼지던 새콤달콤한 맛. 살구는 늘 여름보다 한 발 앞서 나를 찾아왔다.

고향집 뒤뜰엔 한 그루의 살구나무가 있었다. 해마다 연분홍빛 꽃이 피면 아이였던 나는 나뭇가지 아래에서 봄을 만졌고, 꽃이 진 자리에 황금빛 살구가 익어 갈 때면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았다. 아침이면 잘 익은 열매가 땅에 떨어져 있었고, 그걸 살며시 집어 들던 내 작은 손, 그리고 그 손 안의 탱글탱글한 살구 하나, 그것은 하나의 계절이자 나만의 시간이었다.

살구나무(Prunus armeniaca)는 장미과에 속한 소교목으로, 4월이면 연한 분홍색 꽃이 핀다. 7월이면 지름 3cm의 황금빛 열매를 맺는다. 나무껍질은 붉은빛을 띠며, 가을이면 예쁜 단풍으로 변신한다. 그 안에 흐르는 생명의 결은 사계절을 따라 충만하다. 연약한 꽃은 매화보다 늦게 피고 향기도 옅지만,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는 고유한 모습 덕에 한눈에 살구꽃임을 알아볼 수 있다.


ⓒ 동부중앙신문
이토록 사랑스러운 열매에게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씨앗 안에는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독성이 있어 푸른 살구를 과다 섭취하면 시안화물이 방출되기도 한다. 씨앗이 몸에 좋다는 막연한 믿음 아래 무심코 섭취할 경우,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과육만 먹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다만 어린이들이 씨앗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삼키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흥미로운 건, 이 작고 노란 과일이 문화와 역사 속에서도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고전 《신선전》에 등장하는 의사 동봉(董奉)은 중병을 치료한 환자들에게 살구나무를 심게 했고, 시간이 지나 살구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그 숲은 병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였다. 사람들은 그 숲을 ‘행림(杏林)’이라 불렀고, 이후 훌륭한 의사를 가리키는 ‘행림지의(杏林之醫)’라는 말이 되었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杏亶)에도 여전히 살구가 자란다. 또한 과거제도의 급제자들은 살구꽃이 흐드러진 장소인 ‘행원(杏園)’에서 축하를 받았으며, 살구꽃은 급제를 상징하는 ‘급제화(及第花)’로 불렸다.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 양귀비가 좋아했다는 살구나무는 미용의 재료로도 인기를 누렸다.




살구는 시조나 동요, 고전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봄이면 즐겨 부르던 <고향의 봄>에도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가 울긋불긋 피어난다. 작곡가는 그 시절의 향기와 색을 오롯이 담았고, 그 풍경 속에는 어김없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있다. 당나라 풍류 시인 두보는 ‘붉은 구슬 같은 살구꽃을 금 쟁반에 바쳐 드려야겠다.’고 노래했다.

ⓒ 동부중앙신문
종교적 상징도 있다. 구약성경 <민수기> 17장에는 아론의 지팡이에서 살구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장면이 나온다. 죽은 막대기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튼다는 그 신비는 살구나무에게서만 가능한 이적이라 여겨졌다. 동양에서는 살구나무로 만든 지팡이나 목탁을 들고 있으면 맹수가 덤비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온다.

한여름, 다시 살구가 익어 간다. 노란 열매 하나가 나무 아래 땅 위로 떨어지고, 그 순간 다시금 떠오르는 어린 날의 기억. 살구는 단지 열매가 아니라 시간의 향기다. 누군가에겐 추억이며, 누군가에겐 신화이자 문화의 상징이 되는 그 나무. 살구나무 아래, 나는 다시 여름을 맞이한다.
ⓒ 동부중앙신문

↑↑ 원종태숲해설가
ⓒ 동부중앙신문


유미란 기자  news911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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