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개화하는 수수꽃다리) | | ⓒ 동부중앙신문 | |
푸르른 오월은 계절의 여신이다. 산천이 화답하고 초목이 춤을 춘다.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하며 왕성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 풍성한 잔치에 그윽하고 감미로운 향기가 빠질 수 없다. 4월과 5월 금수강산 한반도는 꽃과 향기로 뒤덮인다. 수많은 꽃과 향기 중에도 잊지 못할 로맨틱한 향이 있으니 바로 리라꽃 향기다. 청춘의 향기, 첫사랑의 향기로 불리는 리라꽃 향기는 ‘베사메 무쵸’와 함께 연인들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베사메 베사메 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 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베사메 무쵸야 리라꽃 같이 귀여운 아가씨 베사메 무쵸야 그대는 외로운 산타 마리아/ 베사메 베사메 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 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오월의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베사메 무쵸, 그리고 리라꽃은 한때 나에게는 풀어야할 숙제였다. 베사메 무쵸가 무슨 뜻인지? 리라 꽃이 어떤 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AI에게 질문만 하면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세상이지만, 이 노래를 처음 듣던 나의 어린 시절은 그런 호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베사메 무쵸(Besame Mucho)란 스페인어를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전장으로 떠나야만 하는 절박한 이별의 상황에서 진하게 키스해 달라는 연인의 애절한 소망인줄 짐작도 못했다. 리라(Lilas)로, 라일락(Lilac)으로 불리고 라일락과 흡사한 토종 수수꽃다리가 우리나라에 함께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훗날 나무와 친해지면서다. 식물은 부르는 나라에 따라서 그 이름이 다르고, 누가 그 이름을 처음 전해주었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오늘 나무이야기의 주인공은 수수꽃다리(Syringa oblata Lindl. var. dilatata (Nakai) Rehder)다. 수수꽃다리와 라일락(Syringa vulgaris L.)이 외견상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나무라는 점이다. 라일락을 한국 이름인 수수꽃다리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은 별개의 나무다. 일반적으로는 비슷하여 구분하지 않지만 식물학자들은 이 나무를 구분하여 부른다. 라일락은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작은 키 나무로, 2~5m정도 자란다. 현재는 북미와 아시아,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라일락은 4~6월에 개화하며, 보라색, 흰색, 분홍색 등의 다양한 색상의 꽃을 피운다. 특히, 강렬하고 달콤한 향이 매혹적이라 향수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라일락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다. 페르시아에서는 lilak(리락)을 ‘봄의 전령’이라 부르며, 왕실 정원에서 귀한 꽃으로 재배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유럽으로 전해지고 리라(Lilas)라 부르는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영국의 귀족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며, 영어권에서 라일락(Lilac)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라일락이 “첫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져, 연인들 사이에서 사랑을 전하는 꽃으로 널리 애용된다.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우정’ 등으로, 색상에 따라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기도 한다. 보라색 라일락은 ‘첫사랑’ ‘사랑의 싹이 트다’, 붉은색은 ‘친구의 사랑’, 흰색은 ‘아름다운 맹세’ ;순수‘를 상징한다. |  | | | ↑↑ (정 중앙에 다섯 잎을 가진 꽃잎이 보인다.) | | ⓒ 동부중앙신문 | |
독일에서는 5월을 라일락타임이라고도 부른다. 꽃이 피면 처녀들이 라일락 꽃송이를 보며 즐기는 축제가 열린다. 라일락꽃을 가까이에서 보면 네 갈래로 갈라져있지만 간혹 다섯 갈래인 꽃도 만날 수 있다. 이때만난 다섯 갈래의 꽃을 삼키면 연인의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 다섯 갈래의 꽃은 행운의 라일락이라고 부른다. |  | | | ↑↑ (꽃차례가 수수모양을 닮은 수수꽃다리) | | ⓒ 동부중앙신문 | |
꽃말처럼 낭만과 사랑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라일락의 원종은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 '수수꽃다리'다.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 모양이 수수팥떡을 만드는 수수 꽃을 너무 닮아 '수수 꽃 달리는 나무'에서 수수꽃다리란 토종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중국에서는 ‘정향(丁香)’ ‘조선정향’으로도 부르고 향명으로 ‘개똥나무’ ‘넓은잎정향나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수수꽃다리가 라일락보다 잎이 더 넓은 특징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등 여러 형제가 있다. |  | | | ↑↑ (흰색의 수수꽃다리) | | ⓒ 동부중앙신문 | |
우리가 식물에 대하여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우리나라 수수꽃다리를 유럽에서 수집해 가져간 다음 그들이 개량한 것을 20세기 초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역수입하여 전국에서 조경용으로 심어 가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연고로 우리나라 특산의 수수꽃다리와 개량된 라일락을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1947년 미국 군정청 소속 식물 채집가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에서 야생의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의 한 종류)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한 뒤 ‘미스김라일락(Miss Kim lilac)’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한국으로 역수입됨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각광받는 인기 품종이 된 사례는 식물자원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4~5월의 밤이 되면 수수꽃다리의 매혹적인 향기는 청춘 남녀의 가슴을 뒤흔든다. 그러나 수수꽃다리의 향은 감미롭지만 그 잎은 매우 쓰디쓰다. 인생은 첫사랑처럼 감미로움도 있지만 고통이 공존하는 삶의 이중성을 알려주는 나무가 수수꽃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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