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를 찾은 날 그날의 기억은 오랜 추억으로 남는다. 이미 사찰 경내는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매실나무를 보기도 전에 매향에 취해갔다. 그 은은하고 상큼한 향기는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향기였다. 산사를 휘휘 돌아 지나가는 바람은 아낌없이 향기를 퍼 날랐다. 아~ 이 그윽한 향기가……. 시인 묵객을 홀려온 향기란 말인가? 대체 매실나무는 무엇을 먹고 자라기에, 이 신선한 향기를 내뿜는 것인가? 너무 진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매향은 이미 나의 후각을 마비 시켰다. 선암사는 고고한 매향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필자는 생전 처음 매화의 향기에 취해 정신 줄을 놓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향기를 이제야 만나다니,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꽃을 보기 위해 선암매로 불리는 매실나무를 찾아 갔다. 이미 좋은 자리에는 육중한 카메라와 첨단 장비로 무장한 ‘쟁이’로 불리는 사진 예술가들이 빼꼭히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지 좀체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선암매의 인기를 목도 하는 순간이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사찰 건물과 검은 기와지붕을 배경으로 자태를 뽐내는 매화는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그 고고한 자태와 쉴 틈 없이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향기는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만개 직전인 매화의 군락은 향기도 절정인 듯했다. 사찰 뒤편 오솔길로 통하는 무우전과 각황전 근처에는 담장을 따라 매실나무가 여러 그루 심기어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황홀한 순간이다. 필자는 오랜 시간 이곳을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매향(梅香)의 포로를 자처하고 있었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매화 이야기와 그림 속의 매화가 왜 인기를 차지하고, 선비들이 그 모습을 닮고자 했는지 고개가 끄떡여진다. 선암매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마음가짐이 바뀌는 순간이다. 이후 필자의 매탐 여행은 계속됐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산청의 정당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를 탐매하며 옛 선비의 마음을 헤아리고 한 그루의 나무가 간직한 문화의 정수와 그 상징성에 매료된다. 매실나무는 꽃과 향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나무를 아끼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매실의 유용성을 찾아낸다. 매실을 맛보지 않고도 매실의 효용을 활용하는 진기록도 보인다. 어떻게 매실을 맛보지 않고도 그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실이 매우 신 열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입 콱 물으면 그 새콤한 맛에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일 것이다. 중국의 삼국지에 간웅으로 등장하며 중원천하를 희롱하던 조조는 새로운 성어를 만들어내니, 망매지갈(望梅止渴)이다. 생각만 해도 갈증이 해소된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이다. |  | | | ↑↑ (백매의 개화) | | ⓒ 동부중앙신문 | |
위(魏)나라의 조조가 전투 중에 길을 잃는다. 설상가상으로 식수가 고갈되고 병사들은 갈증을 호소하며 낙오하기 시작한다. 자칫 전멸할 위기에 봉착한다. 백방으로 대책을 강구하던 조조는 한 가지 꾀를 동원한다. 병사들에게 일장 연설을 한 것이다. “바로 저 산 너머에 잘 읽은 매실 밭이 있다. 그 매실은 달고도 시다. 과즙도 풍부하다.” 갈증을 호소하던 휘하 장졸들은 산 넘어 매실을 생각하며 금세 입안에 침이 가득 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다. 현대는 건강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다. 몸에 좋은 매실나무가 눈에 아니 뜨일 리 없다. 섬진강변을 따라 광양, 하동, 그리고 전국에 매실 농원이 들어서고 매실 축제는 인기 축제로 자리 잡는다. 매실나무가 전국적으로 팔려나가고 그 몸값이 치솟은 지 오래다. 매실이 열리면 매실청이나 장아찌를 담그는 열풍이 전국을 들썩이게 한다. 판매장에는 매실청을 담그는 특별코너도 마련된다. 매실이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 주리라는 국민적 믿음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주의할 점이 있다.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청산화합물은 매실 열매의 과육과 씨앗에 들어있다. 더구나 매실의 풋과일 속에는 아미그달린이 풍부하다. 날것으로 그냥 먹는 것은 독을 섭취하는 것이다. 매실청이나 장아찌로 만들어 충분한 숙성기간을 거처야 한다. 특히 청매실이 황매실에 비해 아미그달린 함량이 훨씬 높아 청매실을 재료로 사용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1년 정도 숙성시키고 독소가 휘발되어 사라진 다음 식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  | | | ↑↑ (매화와 살구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매화의 잔가지가 푸른색을 띤다는 것이다.) | | ⓒ 동부중앙신문 | |
이 귀하고 고상한 매화도 조선시대 궁궐로 들어가면 특수한 용어로 변신한다. 임금이 거하는 거처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매화(梅花)틀 또는 매우(梅雨)틀이라 불리는 이동식 변기가 있었다. 임금의 대변(大便)을 매화로 불렀던 것이다. 임금의 변을 향과 맛까지 보아야 하는 상분직(嘗糞職) 어의들은 우아한 매화의 향기를 대하듯이 365일 임금의 매화(便)를 다루었다고 하니 그들의 완곡하고 은유적인 발상이 놀랍다. 어의들이 수행해야 했던 민감한 업무를 조금 더 품위 있게 표현하려는 의도와 왕실의 권위와 상징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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