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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해설가원종태 |
| ⓒ 동부중앙신문 |
이 이야기는 기원은 약 3000년 전에 들어선 주(周)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나라가 중국의 중심으로 번성하게 된 것은 주공(周公) 단(旦),과 소공(召公) 석(奭)과 같은 훌륭한 왕실 인척이 왕을 잘 보필해 선정을 펼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사기(史記)에 전해온다. 소공(召公) 석(奭)은 주(周)나라 문왕(文王)부터 강왕(康王)까지 4대에 걸쳐 정사(政事)를 돌본다. 특히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나라의 서쪽 지역을 맡아 직접 다스리기도 했다. 소공이 다스렸던 지역에서는 귀족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직업을 얻어 실직자가 없이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는 것이 사기의 평가다. 그야말로 완전고용을 이루는 모범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소공의 통치 스타일을 살펴보면 관할 구역을 자주 순시하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곤 했다. 특이한 것은 순시할 때는 관청에 들어가지 않고 관청 밖 감당(甘棠) 나무 아래서 백성의 송사를 듣고 공정하게 해결해 주는 것으로 평판이 자자했다. 소공이 선정을 베풀 때 감당 나무가 좋은 그늘을 제공하여 주었는지, 아니면 소공이 특별히 감당 나무를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감당 나무는 역사의 기록에 등장한다.
관청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것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인지 소공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문지방이 없고 서민이 접근하기 좋은 나무 아래에서의 민원 처리는, 만백성들의 환호를 받는다. 후대의 사람들이 참된 정치를 생각할 때 소공이 앉았던 감당 나무를 마치 소공을 대하듯 좋아하며 그의 선정을 높이 기린 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시경 소남편에 나오는 ‘감당’이란 노래다.
우거진 저 감당 나무/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마세요. 우리 소백께서 지내셨던 곳입니다.
우거진 저 감당 나무/자르지도 말고 꺾지도 마세요. 우리 소백께서 쉬셨던 곳입니다.
우거진 저 감당 나무/자르지도 말고 휘지도 마세요. 우리 소백께서 즐기셨던 곳입니다.
어진 정치를 펴고 떠난 후에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감당지애’(甘棠之愛)라는 성어를 남긴다. 한국의 역사에도 남아있는 영세불망 공덕비를 대신한 것이 감당지애라는 해석이다. 중국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지은 천자문 안에도 ‘存以甘棠(존이감당) 去而益詠(거이익영)’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감당 나무를 그대로 두어라. 떠나갔어도 더욱 기려 읊으리라”라며 지도자의 덕을 숭상하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다. 소백의 선정이 백성들 가슴 속에 오래 간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통치의 표본이자 소백을 흠모하는 공덕비인 감당지애는 지금까지 그 생명력이 살아있는 셈이다.
선정의 상징으로 불리는 감당 나무는 과연 어떤 나무일까? 나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존경과 애정을 바치고 싶은 뭍사람들은 이 나무를 매우 궁금하게 생각한다. 선정이야 소백이 베풀었지만, 감당이라는 나무에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의 소나무나 대나무가 충절과 기개의 상징이듯이 감당은 선정의 상징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3,000여 년 전의 감당이라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쉽게 판별되지 않는다. 지역마다 기록마다 약간씩 다르고 중국에서 지칭하는 나무와 한국에서 지칭하는 나무의 이름이나 실제 나무가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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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피는 팥배나무]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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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孔孟)과 유학을 숭상한 우리의 선조들께서도 이 나무를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벼슬아치가 되면 소백을 닮으라는 뜻에서 감당 나무를 찾아 명륜당에 심고 기르고 본받고자 하니 그 나무가 팥배나무다. 팥배는 배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흰 꽃이 피며 배보다 작은 팥알만 한 빨간 열매가 열린다. 가을이면 단풍도 예쁘게 드는 넓은 잎의 나무다. 서울의 성균관 명륜당에는 수령 300년이 된 팥배나무가 있었는데 2009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말라 죽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린다. 300여 년 동안 문묘와 함께했던 팥배나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 후로는 많은 정치가들이 이름을 내밀었지만, 감당 나무의 노래를 불러줄 대상이 없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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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팥 모습으로 익어가는 팥배나무]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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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정녕 팥배나무가 죽어서일까? 정치인의 가슴 속에는 민생은 간 곳이 없다. 오직 권력의 꿀맛을 보기 위하여 편을 가르고 싸움을 밥 먹듯 한다. 꼬투리를 잡아 비방하고 흠집 내기에 이골이 나고, 순리를 따르는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이젠 그도 힘에 부치는지 오염될 때로 오염되었다는 판관 몇 명에게 나라의 운명을 기대고 있다. 5천만 국민의 가슴속은 까맣게 타고 있지만 안중에도 없는듯하다. 백성이 정치인과 나라를 걱정한 지가 오래되었다. 감당 나무 아래서 선정을 베풀던 소백이 그리워질 뿐이다. 감당지애의 노래는 언제 이 땅에 울려 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