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로 자신의 몸을 찍어내는 자에게도 그윽한 향을 발산하고 그 몸을 태워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나무가 있어 사람들은 이 나무를 향나무라 부른다. 수많은 식물 중에 진한 독을 머금은 식물이 있는가 하면 향나무처럼 그윽한 향으로 인간의 심신을 위로하는 나무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향나무는 학명: 유니페루스 키넨시스[Juniperus chinensis]로 중국원산임을 나타낸다. 측백나뭇과에 속하며 늘 푸른 비늘잎 나무다. 어린 시절은 바늘잎으로 보내다 5~6년 지나면 부드러운 비늘잎으로 변한다. 나무의 키가 보통은 6~7미터 자란다고 하지만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십 수 미터자라는 나무도 볼 수 있다. 나무 중에도 오래 사는 장수 목으로 유명하다. 울릉도에 최고 수령 2,000살로 추정되는 자생목이 있어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 나무 이자 토종 한국 나무이기도 하다.
그윽한 향을 머금고, 사철 푸르며, 오래 사는 향나무는 지존이 거처하는 궁궐에 심기고 사찰에 심기고 서원에 심겼다. 백성을 다스리는 관청에 심기고 살아생전 권력을 누린 사람들이 자신의 저택이나 조상님의 무덤가에 고이고이 심는 나무가 향나무이기도 하다. 동양의 성자로 추앙받는 공자를 모신 공묘와 공부 공림에도 향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속이 붉은 향나무는 잡귀를 몰아내는 영험함이 있는 것으로 믿어 백성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냥 나무에 다가가 냄새를 맡으면 향을 느끼기 어렵다. 찍어내거나 불에 사르면 향은 세상으로 퍼진다. 온몸을 받쳐 마지막 순간까지 향으로 화답하는 나무다. 향나무를 홀로 독점하기 어려운 서민들은 우물가에 향나무를 심고 온 동네가 향나무의 가피를 누렸다. 샘물까지 뿌리를 뻗어 물을 정화하고 서민의 질병을 다스렸다고 믿어온 것이다.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아낙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생명의 원천인 물을 지켜주던 나무가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케 한다.
우리 고장에도 보호수급 향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다. 살아있는 나무 중 가장 수려한 모습에 고령의 나이와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가 신륵사 조사당 앞에 자리한 향나무다. 나옹선사와 무학 대사의 이야기가 스며있고 격동의 여주 역사를 나무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효종대왕 릉 재실에도 큰 키의 훤칠한 향나무를 만나 볼 수 있다. 왕릉과 사찰 향교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마을에 남아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나무만 해도 수십 그루다.
|  | | | ↑↑ 멱곡통의 우물가 향나무 동제를 지내며 보호하는 나무다.] | | ⓒ 동부중앙신문 | |
여주시 멱곡통 492번지에는 아직도 우물물을 지키는 향나무가 뭇사람을 반긴다. 멱곡통 향나무는 마을 입구에서 신선한 샘물을 지키며 이곳을 오고가는 길손들에게 갈증을 풀어주고 시원한 그늘도 제공한다. 그렇게 자리 잡은 지가 300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집안까지 들어온 수돗물의 편안함에 밀렸는지 솟아오르는 샘물이 개울로 넘치지만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동제를 올린다. 그야말로 인간과 나무가 어울리는 자연과 생명 친화의 현장을 연출한다. 오학동 현암통 320-2에 있는 향나무도 우물이 있던 곳이다. 상수도를 사용하면서 우물은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마을회관이 건립되어 마을 사람이 자주 모이는 곳이다. 넓은 마당 한편에 서있는 향나무는 좋은 그늘을 만들어준다. 이 나무 아래는 쉼터 시설이 되어 있어 어르신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방과도 같다. |  | | | ↑↑ [흰색 실에 묶인 북어가 향나무에 바쳐져 있다.] | | ⓒ 동부중앙신문 | |
용트림 모습을 나타내는 우람한 가지에는 하얀 실로 묶인 마른 북어가 특유의 눈빛으로 나그네를 반긴다. 옛 기억을 지우지 않은 서민들이 가끔 돼지머리며 북어를 흰색실로 묶어 나무에 바치고 생기복덕을 기도하기도 한다고 귀띔해 준다. 우물이 있던 시절에는 가을 곡식을 거둬 들이면 시루떡과 돼지머리가 향나무 앞에 놓이고 마을 대표들이 정중한 모습으로 예를 올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전설이 됐다. |  | | | ↑↑ [오금통의 향나무는 여주에서 수폭과 나무 둘레가 가장 크고 왕성한 향나무다.] | | ⓒ 동부중앙신문 | |
보호수로 지정된 표시는 없지만 여양로 576-16(오금통)에는 생육상태가 양호하고 그 크기가 장대한 향나무가 마을 어귀에 살고 있다. 자세히 보면 뿌리를 내린 바탕이 바위 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모습을 자랑한다. 독립수로 자라고 있어 향나무 마음껏 가지를 뻗은 상태로 동으로 서로 쭉쭉 뻗어나간 모습이 호탕스럽다.
자연스럽게 쌓인 축대에는 기도할 때 사용한 향촉이 남아있다. 경이로운 모습의 건강한 향나무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인간이나 나무나 자신을 바쳐 세상을 이롭게 하고 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 음덕을 향유하게 한다면 누가 그를 거부하랴,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이웃에 귀감이 되는 향나무와도 같은 인재가 그리운 시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