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에서 9대까지[1963~79]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토녹화의 최고 지도자로 꼽힌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기간도 길었지만 많은 나무를 식재 한 것으로 유명하다. 헐벗은 민둥산에 치산녹화의 옷을 입혔다. 세계에서 기적의 숲을 만든 지도자로 알려져 있으며 광릉 숲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다. 재임 시 많은 나무를 심었지만, 청와대 내에 현존하는 기념식수 표석은 단 하나다. 청와대 영빈관 오른쪽 담장 부근에 ‘가이즈카’ 향나무 아래 기념식수 표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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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영빈관 앞 오른쪽 담장 옆에 박정희 대통령이 심수한 가이즈카향나무 ]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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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식수한 가이즈카 향나무는 현재까지 잘 자라고 있다. 청와대 밖에는 여러 곳에서 기념식수 표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많은 나무를 심은 것처럼 나무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그중 하나가 현재 청와대에 남아있는 가이즈카 향나무다. ‘가이즈카’라는 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향나무는 일본 이름이 붙어있다.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를 청와대 경내에 대통령이 식재 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왜 이런 지적이 나왔을까?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쟁의 시작은 대구에 있는 달성공원 향나무로부터 일어난다.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월 추운 겨울에 대구 달성공원을 찾아 가이즈카 향나무를 식수했다.’는 것이다. 친일의 상징이자 일본의 앞잡이 이토가 좋아한 나무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당장 베어내어 국가의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상소는 드디어 국회의 문턱을 넘어 동작동 국립묘지 묘역에 있는 가이즈카 향나무와 한국의 교육 현장 주변에 있는 나무들까지 그 화가 미친다.
가이즈카 퇴출 운동의 광풍이 전국으로 몰아친 것이다.
그러나 식물을 사랑한 식물학자의 생각은 달랐다. 학자들은 1909년 이토가 가이즈카 향나무를 달성공원에 기념식수로 식재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처음으로 가이즈카 향나무가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이 1928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미 가이즈카 향나무는 친일 잔재로 낙인이 찍혀 베어지거나 다른 장소로 이식되고 난 다음이다. “친일의 잔재라 카더라!” 에 편승한 감정적 결정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가이즈카[학명: Juniperus chinensis 'Kaizuka']는 중국 향나무의 한 품종이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일본의 종묘상이 ’가이즈카이브끼‘ 라는 상품명을 붙인다. 한국에서는 나사백[螺絲柏]으로도 불린다. 다른 향나무에 비해 잎이 부드럽다. 어린 시절 잠시 가시 잎이 있기는 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면 잎이 부드러워진다. 인큐베이터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향나무는 불교 영향을 받은 나라에서 향을 사용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아껴왔던 나무다. 일본의 도시인 가이즈카에서 도시를 상징하는 나무로 가이즈카 향나무가 상품명으로 선정된 것으로, 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는 향나무 자생지가 있으며 가장 오랜 기간 백성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의 영토에 살고 있는 친숙한 나무가 향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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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릉 국립수목원에 심겨진 은행나무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 했다는 표석이 있다.]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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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께서 심은 나무의 또 다른 논란거리는 금송에 대한 것이다. 금송 역시 일본인이 좋아하는 일본 특산의 나무이자 ’황실의 상징‘이란 주장이다. 금송은 ’송‘자가 들어가지만, 소나무와는 거리가 먼, 낙우송과 친척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나무를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나무 자체가 독특한 모습을 지니기도 했지만, 청와대에 심겼던 나무를 본인이 존경하는 위인의 자취가 있는 아산의 현충사와 칠백의총, 도산서원으로 한그루씩 옮겨 심는다. 식수를 기념하는 표석에도 ‘청와대 경내에서 아끼던 금송을 선열을 모신 경내를 더욱 빛내기 위하여 옮겨 심는다.’고 새겼다. 청와대에서 혼자 보기에는 아까웠던 나무였던 것 같다. 그러나 훗날 사달이 난다. 민족의 정기가 어린 성역에 일본의 상징이자 잔재가 어른거린다는 지적이다.
여론의 몰매를 맞고, 대통령께서 심은 금송은 모두 담장 밖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과연 금송이 일본 황실을 대표하고 일본을 나타내는 나무인가? 친일의 잔재라는 한마디에 역사성도 한 생명의 터전도 잃었다. 일본인이 열광하는 벚나무가 한반도에 지천이다. 일본 황실의 상징은 국화[菊花]다. 위기의 환자들이 치유를 바라며 너도나도 찾는 편백나무 숲도 일본인들은 ‘히노끼’라 부르며 껌뻑하는 나무다.
한반도에서 봄이면 벚꽃축제가 열리고 국화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 국화대전이 성황을 이룬다. 이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의 본보기이자 일본 황실의 문양이며 상징으로 쓰인다. 한국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소나무도 영어권에서는 일본 붉은 소나무[japanes red pine]라 부른다. 이 모두 일본의 상징이니 모두 치워야 할까? 고인의 영전에 국화를 헌화하는 것이 일왕을 상징해서일까? 식물을 가지고 정치색을 입히거나 감정적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 특정국의 입맛을 따지기보다는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식물 주권의 힘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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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릉수목원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박정희 대통령상] |
| ⓒ 동부중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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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께서 심은 나무가 전국 각처에서 자라고 있지만 가장 많은 곳은 ‘국립광릉수목원’이다. 이곳에는 전나무, 잣나무, 은행나무가 식재되어 왕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나무를 심고 가꾼 흔적이 요소요소에 남아있다. 재임 시에 대량으로 심었던 나무들이 훗날 대한민국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88올림픽을 기념하는 올림픽공원으로 옮겨져 시민과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