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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가 원종태의 나무이야기 -동백나무-
유미란 기자 / news9114@daum.net입력 : 2024년 01월 02일(화) 13:41
흰 눈 속에 피는 꽃

ⓒ 동부중앙신문
온실이 아닌 자연에서 흰 눈을 흠뻑 뒤집어쓰고 피어난 겨울 꽃을 본다면 그 아름다움은 분명 평소와는 달라진다. 일단 희귀성이 모든 평가를 잠재운다. 만인의 눈길이 확 쏠리는 것이다. 진한 녹색의 두꺼운 잎과 빨간 꽃잎 노란 수술은 흰 눈과 어울리면 환상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 꽃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겨울에 피어나는 동백(冬柏)꽃이다.

동백은 한국에서 자생하는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의 붉은 꽃을 지칭한다. 넓은 의미로 쓰일 때는 차나뭇과 동백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종의 꽃들을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며 영어권에서는 '카멜리아(Camellia)'라고 부른다.

특이하게 다른 꽃과는 다르게 대략 11월 말부터 꽃을 피워 1월에 절정을 맞이하며 3월까지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추워 곤충이 별로 없기 때문에 수정을 새에게 맡기는 조매화(鳥媒花)다. 그 대신 동백꽃은 향을 만드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새는 향기를 잘 못 맡기에 새를 불러오는 데 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백꽃의 꿀을 가장 좋아해 자주 찾아오는 새가 바로 동박새다.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코끝을 자극하는 강한 향의 설중매를 높이 사는 예도 있지만, 꽃이 피는 시기로 보면 한반도에서는 동백(冬柏)이 이르다. 봄이 도착하기도 전에 긴 겨울의 추위 속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의 에너지는 인간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희망가를 부르는 자에게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 개척자의 눈에는 개척의 외로운 길을 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달고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는 동백은 옛 선비가 닮고자 하는 표상이기도 했다. 절개와 기백의 상징인 송백(松柏)보다도 동백은 한 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동백을 엄한지우(嚴寒之友)라 하여 치켜세우기도 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혹한을 이겨내고 절개를 지키는 가상함이 있지만, 동백은 푸름을 지킬 뿐만 아니라 한겨울 혹한에 누구도 할 수 없는 붉은 꽃을 피워낸다.

봄의 전령이 화신의 등장을 알리면, 삼천리강산에는 백화가 피어난다. 꽃들의 향연이다. 수많은 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화사함에 미소를 띤다. 어느 꽃이라 한들 꽃이 아니랴! 매화도 귀한 꽃, 진달래도 귀한 꽃, 개나리도 고운 꽃, 서로 어울려 꽃 대궐을 이룬다. 그러나 꽃들의 공통점은 화려함의 뒤에는 시듦의 운명을 맞이한다. 외면하고 싶은 추함을 보이는 것이다.

ⓒ 동부중앙신문
대개의 꽃은 임무를 마치면 꽃잎이 하나둘 바람에 날리고 화려하던 색깔이 변하며 퇴색되어 간다. 그 기간이 긴들 열흘을 넘기는 꽃이 없다고 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동백꽃은 질 때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아주 특이하고 비장하다.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무에 붙어 시들지도 않는다. 멀쩡하고 싱싱한 꽃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진다. 아니 누가 이 꽃을 잘라 던졌단 말인가? 아니면 못된 짐승이나 해충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어느 날 아침 바람 한 점 없는데 마치 참수당한 죄인의 머리가 떨어지듯 뚝 떨어지는 것이다. 구질구질함이 없는 청춘의 전성기에 동백은 꽃을 떨군다. 고결한 선비의 넋인가? 은장도를 빼 든 열녀의 고고함인가? 동백꽃은 떨어져 하늘을 보며 아무런 말이 없다. 홉사 땅 위에서 방금 피어난 듯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최후의 모습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난다.

지조와 절개 의리를 덕목으로 삼던 조선의 선비들이 이 모습을 놓칠 리 없다. 이러한 동백의 모습은 많은 선비들이 닮고 싶은 모습이였다.

이렇게 이 글을 마치면 내가 본 동백꽃은 꽃잎이 떨어져 수북이 쌓였는데? 이 무슨 소리야! 하는 분도 계실 것 같다. 식물의 세계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동백보다 일찍 피는 아기동백이 있다. 아기동백은 꽃의 모습과 특성이 약간 다르다. 통꽃이 떨어져 낙화하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한 장 한 장 떨어진다. 동백에 비해 잎의 크기와 꽃의 크기가 작아 아기동백이라 불린다. 통꽃이 아닌 꽃잎이 수북이 떨어져 있다면 아기동백이 있다는 표시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오늘 다루는 동백(冬柏)과는 다른 꽃이다. 춘천에는 동백이 겨울을 날 수가 없다. 춘천을 무대로 봄에 피어나는 동백은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리는 이름을 향명(鄕名)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동백의 열매로 동백기름을 만들지만, 생강나무 열매로도 머릿기름을 만든다.

ⓒ 동부중앙신문
확실한 것은 붉은 동백꽃은 향기가 없다. 그러나 노란 동백꽃(생강나무꽃)은 그윽한 향기가 있다. 김유정의 작품에도 동백은 향기가 있다. ‘아니요 우리 집 동백은 향기가 진한데요’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최근에 개발된 원예종이다. 동백의 향을 그리워하는 원예가의 노력의 산물이다. 식물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것이 식물의 세계다.
유미란 기자  news911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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