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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할아버지가 사랑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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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국 신화에는 박달나무가 등장한다. 단군(檀君)이나 신단수(神檀樹)에도 박달나무 ‘檀’자가 들어간다. 단군 할아버지가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었다는 신화가 넓이 알려지면서 박달나무는 배달의 민족, 시작을 알리는 나무로 자리매김한다. 단군신화에는 환웅은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것이 10월 3일 개천절의 효시다. 단군과 신단수의 단은 삼국유사에서는 壇,[제단 단] 제왕운기에서는 檀[박달나무 단]으로 기록하여 글자의 의미가 다르기는 하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단군신화의 단이 실제로 박달나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는 주장도 편다. [삼국유사]에 ‘단 나무(壇樹)’라 하여 오늘날의 당산나무나 당나무의 어원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제왕운기]에는 박달나무(檀)라고 하여 후손들은 신단수를 박달나무로 해석한다. |  | | | ⓒ 동부중앙신문 | |
그러나 단군신화의 단은 특정 나무가 아니고 박달나무보다는 당산나무로 많이 쓰인 느티나무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과 함께 단(檀)은 박달나무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이용 가치가 큰 나무를 대표하는 포괄적인 뜻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필자가 정작 궁금한 것은 단군의 나무라는 박달나무였다. 박달나무가 어떤 나무이기에 나라의 건국과 함께 신화 속에 등장하며, 학자들 간의 열띤 토론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뭔가 깊은 사연이 서려 있고 귀한 나무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평소 박달나무를 이야기로는 많이 들어왔지만 살아있는 박달나무를 직접 본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쓰임새만은 잘 알고 있었다. 나무 중 가장 단단한 나무로 다방면에 요긴하게 활용된다. 다듬잇방망이나 홍두깨, 방아와 절굿공이를 만들어 사용했다. 나무가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무거워서 수레바퀴나 바큇살을 만들기도 했으며, 떡살과 다식판, 머리빗으로도 만들어 사용했다. 일상에 더할 나위 없는 요긴한 박달나무는 자라기가 무섭게 베어냈다. 큰 고목은커녕 작은 나무도 쉽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달나무는 단순히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만 유용한 재료가 아니었다. 지금도 마을에 서낭당이나 당산나무가 있듯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신성한 나무로 숭배된다. 고조선 때부터 활을 단궁(檀弓) 맥궁(貊弓)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고 부르며 활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포졸은 박달나무 방망이로 무장했다. 박달나무가 어찌나 단단했던지 도끼로 나무를 찍으면 나무가 잘리지 않고 도끼날이 부러져 쇠[鐵] 나무라 불리기도 했다. 적을 제압할 무기가 빈약했던 고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로 변신할 수 있는 단단한 나무가 박달나무인 셈이다. 적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데 박달나무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전략물자였다. 박달나무의 쓰임새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정체가 궁금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박달나무를 직접 볼 수는 없을까? 필자는 사진으로만 보던 박달나무를 만나 보기 위해 여러 차례 탐방에 나선다. 노래로 유명한 천둥산 박달재를 찾아갔으나 쉽게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심산유곡을 헤매던 중 마침내 강원도 국립공원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  | | | ⓒ 동부중앙신문 | |
박달나무[학명: Betula schmidtii REGEL.]는 자작나뭇과의 넓은 잎으로 단풍이 들며 큰키나무로 20~30m쯤 자란다. 암수 한 그루다. 5~6월에 꽃이 피는데 수꽃 이삭은 자작나무처럼 밑으로 늘어지지만, 암꽃은 가지 끝에서 위로 선다. 작고 둥근 모양의 열매도 위로 곧게 서며 10월경에 여문다. 나무껍질이 어두운 회색을 띤다. 얼핏 보면 느티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치악산 국립공원 세렴폭포 가는 길목에서 이름표를 달고 있는 박달나무와 만날 수 있다. 이 땅에 단군 할아버지가 사랑한 박달나무가 울울창창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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