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아지고 황금벌판에 농부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땀 흘리고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 농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기름진 햇곡으로 정성스럽게 감사의 제를 올릴 추석이 문턱이다. 하늘과 조상님과 대자연의 보살핌에 감사하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차례상에는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과 예를 갖춰 음식과 과일을 준비한다. 이때 첫 번째로 오르는 과일이 대추다.
오랜 세월 동안 조율이시[棗栗梨枾] 하면서 이 과일의 서열을 고집해왔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잘 모르는 나는 늘 구경꾼이었다. 특별히 그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도 없고 묻지도 않았다. 어르신들께서 하시는 일이니 그냥 따라 했을 뿐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르신들은 떠나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내가 상을 차리고 예를 갖추어야 하는 중심이 됐다. 손주가 묻는다 ‘할아버지 이 대추는 왜 여기다 놓아야 하나요?’
그냥 옛날부터 그렇게 놓았단다.'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뭔가 이야기를 하고자 하니 이게 집안마다 그 순서나 방향이 다르다. 진설도를 봐가며 상차림을 하지만, 왜 그 위치에 대추부터 놓아야 하는지는 설명이 없다. 이유를 모르니 헷갈리기 일쑤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우린 그런 거 안 따진다. 하면서도 주섬주섬 상을 차리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만물박사라는 인터넷을 접속하지만, 지방에 따라 가문에 따라 다르고 용어는 한문투성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따라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조율이시[棗栗梨枾]' 등 한문 용어가 등장하지만 왜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설명은 부실하다. 그중에서도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을 배치하는 순서를 "대추, 밤, 배, 감, [棗栗梨枾]"의 순서를 정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뜻이 숨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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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공보다도 큰 대추가 주렁주렁 달려 지주에 의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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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으로 꼽히는 대추.[棗 조]는 대추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다. 대추나무는 낙엽이 지는 넓은 잎 중간키 나무로 8m 정도 자란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잎이 늦게 나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양반 나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잎을 내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목표지향적이다. 대추나무는 암수한몸이며, 꽃을 피우면 헛꽃이 없고 반드시 열매를 맺는 다산의 상징으로 믿어왔다. 대추는 씨가 과육에 비해 큰 것처럼 아주 옹골차고 야무진 후손이 태어나 가문이 날로 번성하기를 기대하는 염원도 담겨있다. 대추는 한 열매에 씨앗을 하나만 가지고 있으므로 나라님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으며, 건강을 지켜주는 최고의 보약 재료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추나무 방망이 같다.’라는 속담처럼 대추나무는 강력한 무기이자 방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 청동기 이전에 이처럼 단단한 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대추나무로 창[矛]을 만들고 방패[盾]를 만들어 사용했다. 하나는 찌르는 것이고 하나는 막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상반된 기능으로 서로 앞뒤가 맞지 않거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모순[矛盾]이라고 하지만 그 어원은 창과 방패에서 시작한다. 나를 지키고 가문을 지키는 나무, 꽃이 피면 기어이 열매를 맺어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대추나무의 지혜를 조상님들은 본받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인륜지대사에 대추와 밤은 최우선순위로 자손에게 전달하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제를 올리는 것은 자신과 후손의 미래를 위하여 행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