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전북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314번지 천연기념물 183호 이팝나무의 개화 | | ⓒ 동부중앙신문 | |
오월의 식물은 싱그러움 그 자체다. 생동하는 만물이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윤기가 흐르는 잎과 풍성하게 피어나는 오월의 꽃은 앙상한 가지에 달린 이른 봄의 꽃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풍성함과 넉넉함이 엿보인다. 5월의 꽃, 꽃 중의 꽃으로 불리며 화려함의 극치라는 모란꽃의 자태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십 수억의 인구를 가진 나라가 부귀의 상징으로 이 꽃에 열광한다. 그런가 하면 빛과 그림자처럼 서민의 가슴 아픈 사연을 위로하며 오월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도 있다.
5월 입하 무렵이면 쌀밥 나무로 알려진 이팝나무가 특유의 하얀 꽃을 피워낸다.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날을 꿈꾸며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던 시절이 불과 3~40년 전 이야기다. 이밥이란 표현은 ‘이(李) 씨의 밥’이란 의미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벼슬아치가 되어야 이 씨인 임금이 내리는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팝나무는 쌀밥의 또 다른 이름인 이밥나무로 불리다가 이팝나무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주장도 있기는 하다. 이팝나무꽃 피우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 무렵이다. 입하에 꽃이 피는 나무, 그래서 ‘입하나무’ ‘입하목’이 이팝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도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홉사 하얀 쌀밥처럼 꽃피는 이팝나무에는 옛날 보릿고개의 슬픈 전설이 남아있다. 곡간에는 이미 쌀이 떨어지고 들판의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았다. 가혹한 춘궁기에 배고픔의 고통을 달래야 했던 백성은 부지기수였다. 보릿고개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 무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처절한 시기였는지를 잘 알고 있다. 초근목피로 배고픔을 달랬다는 그 시기가 보릿고개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던 시절, 굶주리다 지친 어머니의 빈 젖을 빨다 숨진 아기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죽어간 아기를 지게에 지고 동구 밖 산자락에 묻어야만 했던 부모의 마음을 아는 젊은이가 지금 시대에도 있을까? 음식쓰레기가 처치 곤란인 이 시대에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아기의 무덤가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저세상에서나마 하얀 쌀밥을 마음껏 먹어보라는 부모의 가슴 시린 사연을 알고나 있다는 듯이 이팝나무는 쌀밥 같은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어울리는 나무다.
|  | | | ↑↑ 이팝나무 | | ⓒ 동부중앙신문 | |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뭇과의 큰 키 나무로 20~30m나 자란다. 가슴둘레가 몇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이면서 5월 입하 무렵이 되면 특유의 꽃을 피운다.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꽃을 온 나무에 피워내는 꽃 덩어리 나무다. 꽃잎이 마치 기름기가 흐르는 밥알같이 생겼다. 꽃핀 모습을 멀리서 보면 쌀밥이 수북이 담긴 것처럼 보인다.
이팝나무는 벼농사의 풍흉과도 관계가 있으니 이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평야 지대로 유명한 전북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314에 천연기념물 183호로 지정된 이팝나무가 있다. 30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온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꽃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나무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있다. 떡과 술도 얻어먹고 고기도 얻어먹은 세월이 짧지 않다. 고로 신통력도 가지고 있다.
이 나무가 꽃이 함박 피워내 오래가면 그해는 벼농사가 풍년이 든다. 그와 달리 꽃이 드물게 피고 수세가 쇠약하면 그해는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지력과 신통력 덕분에 국가기관으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쌀 산업 특구인 여주에도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다만 입하에 모든 이팝나무가 만개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지역의 꽃을 찾아 나선다면 그 지역에 만개 여부를 확인하고 찾아 나서는 방법이 실패를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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