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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도
김웅섭 기자 / 1282kim@hanmail.net 입력 : 2012년 04월 13일(금)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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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동부중앙신문(주) | | 이맘때쯤이면 항상 일본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실은 교과서를 검정해 주면서 우리나라를 자극해 온다. 올해는 작년보다 증가한 교과서가 검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잠시 시끄러워질 뿐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우리가 먼저 독도가 왜 우리땅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가.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
지리적으로 독도는 우리 동해상에 울릉도로부터 87.4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일찍이 조선 초기에 관찬된 『세종실록』지리지(1432년)에서는 “우산(독도)·무릉(울릉)…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풍일이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에만 육안으로 보이는 섬은 독도가 유일하며, 울릉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
나. 우리 옛 문헌 속의 독도
최근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울릉도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6세기 초엽(512년)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키면서부터였다. 이 우산국의 판도를 『세종실록』 지리지(1432년)에서 무릉도(울릉도)와 우산도(독도)라고 하였는데, 그 뒤의 주요 관찬문헌인 『고려사』지리지(1451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에도 독도의 옛 지명인 우산도를 적고 있어, 그 지명이 20세기 초엽까지 계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독도는 지속적으로 우리 영토에 속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다. 일본 에도ㆍ메이지 시대의 독도 소속에 대한 기본인식
안용복의 일본 피랍(1693년)으로 촉발된 조선과 일본간의 영유권 교섭결과, 울릉도 도해금지령(1696년)이 내려짐으로써 독도 소속문제가 매듭지어졌다. 또한 일본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서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에서는 시마네현(島根縣)의 지적(地籍)편찬과 관련하여 내무성(內務省)의 건의를 받아 죽도(竹島) 외 일도(一島), 즉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지령(1877년)을 내렸다. 이러한 것들은 일본에서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라. 대한제국의 독도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통치
20세기에 들어와 대한제국은 광무 4년「칙령 제41호」(1900년)로 울도군 관할구역에 석도(石島), 즉 독도를 포함시키는 행정조치를 통해 이 섬이 우리 영토임을 확고히 하였다. 1906년 울도(울릉도) 군수 심흥택은 일본 시마네현 관민으로 구성된 조사단으로부터 독도가 일본령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즉시 강원도 관찰사에게 “본군(本郡) 소속 독도가…”라고 하면서 보고서를 올렸다. 이는 「칙령 제41호」(1900년)에 근거하여 독도를 정확하게 통치의 범위내로 인식하며 관리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한편, 이 보고를 받은 당시 국가최고기관인 의정부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이 ‘사실 무근’이므로 재조사하라는 「지령 제3호」(1906년)를 내림으로써, 당시 대한제국이 독도를 영토로서 확고하게 인식하여 통치하고 있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 일본의 불법적인 독도 영토 편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890년대부터 시작된 동북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발생한 러·일전쟁(1904-1905) 시기에 무주지 선점 법리에 근거하여 「시마네현 고시 제40호」(1905)로 독도를 침탈했다. 이러한 일본의 행위는 고대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확립하여 온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유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에서,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불법이며,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행위이다.
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 재확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는 카이로선언(1943)에 따라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는 당연히 대한민국 영토가 되었다. 아울러 연합국의 전시점령 통치시기에도 SCAPIN 제677호에 따라 독도는 일본의 통치·행정 범위에서 제외된 바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은 이러한 사항을 재확인하였다. 이후 우리는 현재까지 독도를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사. 추가 논리 개발 방안
많은 나라가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알고 있는 것은 일본의 국제적인 장악력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홍보는 미약하고 그저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분노할 뿐이었으며,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를 아느냐’라고 물으면 그저 ‘예전부터 우리 땅이었으니까’같은 설득력 부족한 대답이 나오기 일쑤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는 일본과 같이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먼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독도가 확실히 우리 땅이라는 근거를 알리고, 숙지하게 해야한다. 말로만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우리 영토임을 주장해야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그 근거를 배너로 올린다거나, 유명한 카페 등에 독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글을 올리는 것이다. 그 다음 국제적인 홍보로 나서야 한다. 경제적 비용이 들더라도 국제적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사이트에 홍보배너를 올리거나, 요즘 한창 활성화된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독도에 대해 일깨워준다면 자연스럽게 독도는 대한민국 땅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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