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보랏빛으로 피어난 오동나무꽃 | | ⓒ 동부중앙신문 | |
어느새 여름으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초록이 세상을 덮어가는 순간에 큰 키의 나무에 연보랏빛 꽃을 만나면 마음이 설렌다. 오동나무꽃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독특한 보랏빛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묘한 품격조차 느껴진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벚꽃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향기와 색채에 잠시 빠져든다. 아마도 이 나무에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독특한 상징과 전설적인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동나무(학명: Paulownia coreana Uyeki)는 학명에 나타나는 것처럼 한국이 고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넓은 잎은 어른의 얼굴을 가릴 만큼이나 크다. 연간 3미터씩 자라는 속도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단지 생장 속도만으로 귀하게 여겨진 것은 아니다. 곧게 자라고, 넓게 품으며, 맑은 울림을 만들고, 긴 시간을 사람과 함께 견디는 소망과 꿈을 간직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  | | | ↑↑ 오동나무 둥근 우듬지는 가구, 악기, 등 고급재료로 쓰인다. | | ⓒ 동부중앙신문 | |
속성수로 자람이 빠른 오동나무는 줄기가 곧고 단정하다. 속은 비어 있지만 기품이 높은 나무로 대접했다. 속을 비운 것에서 선비가 지녀야 할 탐욕을 버린 모습을 읽어낸 것이다. 목재는 가벼우면서도 질기다. 나무의 울림은 따라올 나무가 없다. 오동나무가 악기의 재료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습기를 잘 막아내는 성질이 있어 고급 가구재로 인기가 있다.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라는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도 매우 크다. |  | | | ↑↑ 상상의 새 봉황(鳳凰), AI가 그려낸 이미지 | | ⓒ 동부중앙신문 | |
오동나무가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에는 독특한 이유가 있다. 오동나무의 목재 이용 가치 외에도 태평성대를 기다리는 희망이 서려 있는 상서로운 나무다. 전설의 새 봉황은 화려한 금은보화 위에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동나무 위에 내려앉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어쩌면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 귀한 존재는 높은 곳이 아니라, 품격 있는 곳에 머문다.”라며 오동나무를 성스럽게 대했다. 그것도 아무 때나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평화롭고 임금의 덕이 밝으며 백성의 삶이 안정되었을 때만 봉황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난세에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새. 그래서 봉황은 단순한 상상의 새가 아니라 “좋은 시대의 징표”였다. 지금도 그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 최고 VIP가 가는 곳에는 봉황의 그림부터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신령한 봉황이 왜 하필 오동나무를 선택했느냐는 점이다. 옛사람들은 오동나무를 군자의 나무로 여겼다. 곧게 자라고, 잎이 넓고, 꽃이 청아하며, 무엇보다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맑은 울림을 내는 나무. 가야금과 거문고 같은 전통 악기의 몸통이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것도 그래서였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울림이 나온다고 믿었다. 결국 봉황과 오동나무의 만남은 우연한 전설이 아니라, “고귀한 존재는 고귀한 자리에서만 머문다.”라는 오래된 철학의 산물이다. 생각해 보면 오늘 우리 사회도 봉황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더 나은 정치, 더 정직한 사회, 더 품격 있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결과만 원한다. 봉황이 내려오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오동나무를 키우려 하지 않는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면서도 조급함과 분노를 먼저 키운다. 타인의 성공은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을 단단히 가꾸는 일에는 쉽게 지친다. 오동나무는 그런 우리에게 묵묵히 교훈을 준다. |  | | |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수록된 거문고 오동나무가 주재료다) | | ⓒ 동부중앙신문 | |
이 나무는 매우 빨리 자라지만, 좋은 악기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장인들은 나무를 베어 곧바로 쓰지 않는다. 수년 동안 바람에 말리고 시간을 견디게 한다. 그래야 비로소 깊은 울림이 생긴다고 믿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금세 커질 수는 있어도 깊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삶의 품격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동나무는 넓은 잎으로 큰 그늘을 만든다. 옛 농촌에서 사람들이 집 가까이에 이 나무를 심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날, 그 그늘에서 사람들은 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 오동나무는 혼자 빛나는 나무가 아니라 타인을 품어 주는 나무였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떤가.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서로를 쉬게 해 주는 그늘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말은 넘쳐나지만, 사람의 마음을 품어 주는 공간은 드물다. 손익의 예리한 척도를 들이대는 현대인에게 오동나무는 말없이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 준 적이 있는가?”라고.
봉황과 오동나무의 전설은 결국 정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품격에 관한 이야기다. 좋은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안의 오동나무를 키울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마음을 곧게 세우고, 욕심을 비우고, 타인을 품을 수 있는 넓은 그늘을 만들 때 비로소 봉황은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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